[와이뉴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제46호로 등록된 고려시대 유물이다. 미륵부처라 불리는 높이 2.2m의 석불입상이며 하반부가 묻혀 있어 전체 모습을 알 수는 없다. 미륵은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것으로 정해져 있는 존재다.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지녀 형상을 보살상과 불상의 두 형태로 제작하는데 대농리 입상은 불상으로 만들어졌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는 원정모° 형식의 갓이 얹혀 있다. 양감이 없는 얼굴에는 가로로 긴 눈, 도톰한 코, 다물고 있는 입이 표현됐으며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양감이 드러나지 않는 밋밋한 표현 등은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과 유사한 표현 기법을 보인다. 이는 고려 전기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준다. 양감 없는 얼굴과 신체, 가로로 긴 눈과 두툼한 코, 일자로 다문 입, 크기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두 팔과 손의 표현 등은 고려 후기 불상의 지방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전한다. 원정모圓頂帽°: 챙이 둥글고 정상부가 봉긋한 형태의 모자로 원나라 귀족들이 쓰던 모자였으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 관리와 승려들이 착용. -자료
[와이뉴스] 배우 김희애 씨가 예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오랜 기간 배우 생활을 하면서 그 명맥을 잇는 비결 질문에서였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기는 힘들고, 하다 보면 익숙해지며 요령이 늘고 그러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것. 그러니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일 터이다.
[와이뉴스]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이는 국민주권 원칙을 규정한 것이며 대한민국 국가 권력의 원천이 국민임을 밝힌 것이다. 흔히 헌법(憲法)이라고 약칭하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헌법’이다.
[와이뉴스] 공복(公僕)은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공무원을 일컫는 말이다. 순화어로 ‘봉사자’란 표현도 있다. 한자로는 공변될(공적) 공公, 종 복僕 자를 쓴다. 인사혁신처에 따른 공무원의 종류로는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이 있으며 경력직은 다시 일반직과 특정직, 특수경력직은 정무직과 별정직으로 나뉜다.
[와이뉴스] 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한 시인은 말했다.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중요함을 이른 터일 것이다.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제15·16·17대 국회의원과 제32·33대 경기도지사, 제10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으나 41.15%의 득표율(1439만 5639표)을 보이며 2위를 차지했다. ˚이형기, '낙화(落花)' -2025.06.08. 경기 안산
[와이뉴스] 경기헤드라인 문수철 대표는 인터넷신문 언론계에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저널리즘 철학은 ‘정론직필, 공정보도, 민의대변’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념은 경기지역의 미래를 밝히고 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문 대표는 “정의와 진실이 살아 숨 쉬는 언론이야말로 국가와 지역사회의 진정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문수철 대표는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헤드라인을 책임지는 언론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포부를 지닌다. 그는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경기헤드라인의 운영 방침에도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경기헤드라인은 공정보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문 대표의 경력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그는 언론계에 몸담기 전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이러한 경험은 경기헤드라인을 이끌어가는 데 탄탄한 자산으로 작용한다. 문 대표는 “다양한 경험이야말로 사람을 성장시키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경기헤드라인의
[와이뉴스] 이천시에 따르면, 이천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높이 6.47미터의 방형 석탑으로 균형미를 보이는 이천의 대표 석조문화재 중 하나다. 이 탑은 원래 이천시 관고동 이천향교 부근에 3층석탑과 함께 있었으나 조선의 우수한 문화재를 한데 모아 두려는 일제의 의도에 따라* 1915년 조선총독부가 이천 시민의 뜻과는 별개로 경복궁으로 옮겨 갔고 1918년 오쿠라 기히치로라는 기업가에 의해 다시 일본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동경 사설박물관 오쿠라슈쿠칸 후원에 세워져 있다. 이 곳에는 또한 일제강점기 무단 반출된 평양 율리사지 팔각칠층석탑도 세워져 있다고 알려졌다. 오층석탑 자리는 이천시청사 부지 내에 위치하며 탑의 환수를 기원하는 이천 시민 20만의 염원을 담아 현재는 닮은 모형 석탑이 위치한다. 이천시는 이천오층석탑 되찾기 시민운동 추진위원회 및 석탑 반환 요청, 일본 관계자들과의 미팅 등을 추진하고는 있으나, 이천시 관계자에 의하면 일본이 탑을 돌려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전해진다. *손신영, "이천오층석탑의 반출과 조형",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2021. -자료 참조: 이천시, 경기도메모리 등 ※ 촬영: 20
[와이뉴스] 용인시청 본관 지하 1층에 위치한다. 참전 유공자들의 계급, 이름, 군번 등이 기록된 벽과 참전 유공자 2인에게서 받은 병상일지, 승룡화보, 베트콩 모자 등의 전시품을 보유하고 있다. 좌측 벽면에는 42.5㎡, 우측 벽면에는 3,816㎡ 면적의 참전 용사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용인시에 따르면, 이곳에는 용인출신 6.25전쟁 참전용사와 월남전 참전용사 1738명(6.25 참전용사 1341명 / 월남전 참전용사 397명)의 기록을 2012년 1월 추가로 벽면에 새겼다. 이에 앞선 2011년 5월 용인시가 사업비 3천만 원으로 준공했으며 이에 따라 42.5㎡규모(6.25 참전용사 4081명, 월남전 참전용사 3361명 등 총7442명의 명부)의 좌측 벽과 우측 벽에 모두 9180명의 명부를 모셨다고. 용인시 관계자에 따르면, 초반 이곳을 완공했을 당시에 유공자 가족 등이 찾아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상으로는 그저 평범한 동판처럼 보이겠지만, 막상 이곳을 걸어보면 그 빼곡한 이름들에 절로 숙연해진다. 단 한 줄, 단 한 칸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 담겼을 그의 인생과 당시 그를 전장으로 떠나보냈을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이 여실히 전해진다. 운좋게
[와이뉴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이다. 한자로는 꽃 화花, 없을 무無, 열 십十, 날 일日, 붉을 홍紅을 쓴다. 이는 한번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다는 의미이며 '권불십년(權不十年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 '달도 차면 기운다' 등의 말들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의 삶은 명백히 유한하고, 사람이 맡는 자리나 맺는 관계 또한 그 끝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뿐'이라는 설과도 얼핏 맞닿아 있는 듯도 하다.
[와이뉴스] 2016년 박흥식 감독의 동명의 영화도 존재한다. 단어로서의 의미는, '말하는 꽃' 또는 '말을 이해하는 꽃'의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뛰어난 미인, 기생을 비유하는 표현이라 전해지며 중국 4대 미녀인 양귀비의 별칭이라고도 알려진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 현종과 양귀비가 태액지(太液池)에서 연꽃 구경을 하는 와중, 좌우 신하들이 꽃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러자 황제가 귀비를 가리키며 “나의 말하는 꽃과 다툴쏘냐?(爭如我解語花)”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자로는 풀 해解, 말씀 어語, 꽃 화花를 쓴다. 위의 동명의 영화 또한 1940년대 서울을 무대로 펼쳐지는 기생(해어화)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기생은 천인 신분이었으나 춤, 노래, 시 등에 능한 예인이었으며 관기, 민기, 약방기생(의녀), 상방˚기생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대(혹은 근대) 남성들의 여성을 인식하는 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상방(尙方): 왕과 왕비의 의복을 지어 바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