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뉴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정근식)가 앞선 8월 23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제39차 위원회를 열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1)’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5년 만에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의료문제 및 사망자 처리 의혹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시도 등을 밝혀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4일 오전 10시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신청 접수 1호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화해위원회는 2020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했다. 지난해 5월 조사개시 이후 1년 3개월 만에 첫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2021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형제복지원 설치와 운영에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다수의 자료를 최초로 확보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수사‧공판 기록과 부산 각 경찰서 소장 ‘즉심사건부’, ‘구류자명부’, ‘소년범죄사건처리부’, 각 시설별 아동카드, 형제복지원 신상기록카드 등을 비롯해 보안사 문건, 정신과 약물 투입 목록 등을 입수해 진실을 밝혀냈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는 2021년 3월 11일 대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를 기각하면서 밝힌 “단순히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특수감금죄가 성립하는지 여부 만을 문제로 삼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단편만을 보는 결과”라며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으로 명예회복과 정부 조치를 통해 피해자 아픔이 치유되어 사회 통합 실현을 기대한다”고 한 점에 따라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를 위해 노력해 왔다.
<무차별 부랑인 단속‧수용 근거 내무부 훈령 410호, 위헌‧위법 확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진실규명에서 무차별한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1975. 12. 15. 제정)의 위헌‧위법성을 확인했다.
이 훈령은 부랑인이라 지목된 사람을 어떠한 형사절차도 거치지 않고 시‧군‧구청과 경찰이 합동으로 구성한 부랑인 단속반으로 하여금 수용시설에 보내 기한의 정함이 없이 강제수용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내무부 훈령 410호는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자 105명 추가 확인…사망자 총 657명>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657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많은 수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최초로 확보한 사망자 통계, 사망자 명단 등 14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같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 응급 후송 중 사망(DOA, Dead On Arrival) 등 의문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망진단서도 조작한 것으로 확인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1984년에는 최대 4,35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제복지원 일반인 비교, 결핵 사망률 29.2배↑, 일반사망률 13.5배↑>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의 사망자 수도 일반 사망보다 높게 나타났다. 조사 결과, 1986년 한해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135명으로 당시 일반국민 사망률 0.318%보다 13.5배나 높은 4.30%였다.
결핵사망률은 더 높게 나타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의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구 결핵사망률 0.014%와 비교해 29.2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신과 약물 과다 투약 ‘화학적 구속’ 정황>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화학적 구속’이 이루어진 정황도 드러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 정인데 이는 1년 동안 342명(당시 정신요양원 수용인원 총 395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1986년 형제복지원 회계에서 지출된 ‘정신환자시약비’는 총 1,267만 여 원으로, 일반환자시약비 1,015만여 원보다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최초로 입수한 형제복지원 정신과 약물 구입 목록에는 정신과 전문의약품으로 정신분열증과 양극성장애 치료제인 할로페리돌, 간질성 경련 및 부정맥치료제인 디펠과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바리움, 달마돔 등도 포함돼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 가운데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임의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사, 형제복지원에 공작원 투입 ‘갈채공작’>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 문건을 확보해 보안사가 형제복지원을 집중관리한 사실도 확인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어 있는 납북귀환어부 김모씨(당시 29세)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위장 침투시켰다.
보안사는 1986년 5월 8일 이 수사공작을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을 불순분자에 의한 조직적인 집단행동 유발가능성이 높은 집단’,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를 하는 곳’으로 판단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 박○○ 원장으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지속적으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안기부 주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청와대, 대검, 치안본부, 보안사 고위급 참석>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주재로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안사 문건도 최초로 공개됐다.
1987년 3월 24일 안기부 2국장 주재로 안기부 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관련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다. 형제복지원 원생 30여 명이 집단 탈출해 복지원 실태를 폭로하고, 다음 날에 대책회의가 열린 것이다.
3월 26일에는 청와대 정무 2수석, 안기부 2국장, 내무부 차관, 대검 차장, 치안본부장, 총리비서실장, 부산시 부시장 등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형제복지원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국보법, 반공법 위반 공안사범 강제수용 관리>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보안법, 국방경비법, 반공법 위반자를 신원특이자로 구분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감시한 사실도 밝혀냈다.
공안사범 15명을 사회안전법 및 요시찰인 업무조정규정에 의거해 관리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진실화해위원회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존안자료 중 요시찰 및 보안처분 관련자료, 부산지검 공안과 보안처분 대상자 명단 등을 입수해 확인했다.
<강제 노역 및 노임(자립적금) 미지급 착복>
조사과정에서 수용자들이 강제노역한 대가로 자립적금을 형제복지원이 미지급하거나 착복한 사실도 밝혀냈다. 1986년에 1인당 평균예입액은 550,819원인데, 1인당 평균 지급액은 204,729원이다. 1인당 무려 346,090원의 차이가 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원생들에게 자립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착복한 것으로 보았다. 자립적금 몰수 사실은 원장인 박○○ 수사 당시 검찰이 압수한 ‘기증금 세입결의서’ 및 ‘기증금 출납부’ 등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강제실종 아동 인권침해…6세 강제 입소, 48년 만에 가족상봉>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48년 만에 가족을 상봉한 사례도 확인했다. 진실규명 신청자인 설○○(54)는 당시 6세이던 1974년 부산역 부근에서 단속반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됐다.
설 씨는 입소 당시 신상기록카드에 생년월일 오기, 주소 불명으로 기재됐다. 가족들은 설 씨를 찾지 못해 군대 소집 불응에 따른 벌금이 부과되자, 사망 신고했다.
설 씨는 1982년 형제복지원을 탈출해 배달원, 공사장 잡부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왔다. 설 씨는 올해 1월 48년 만에 남동생과 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났다. 유전자 검사를 받아 혈연관계를 입증하고, 현재 원적 회복 절차를 밟고 있다.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아동 피해자 상당수가 성명과 생년월일 등 중요한 신상정보가 변동돼 가족과 연락이 끊기고 이중 호적이 만들어진 후 원호적이 말소 처리된 경우 등이 다수 확인됐다.
<관계기관의 조직적 축소‧은폐시도>
이번 진실규명에서는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보건사회부가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한 것으로 확인했다.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에 공식사과하고 피해회복 위한 실질조치해야>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을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하여,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가는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시행해야 하고, 국회는 2022년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관계기관에 이번 권고사항을 통지하고, 이번 진실규명에는 포함되지 않는 진실규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조속히 단계적으로 진실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2005년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3건의 시설 강제수용 신청 건이 접수되었으나 당시에는 시설수용 문제를 ‘국가범죄’로 인지하지 못했다”라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임을 종합적으로 규명하였다”고 밝혔다.
또 정근식 위원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 20일 형제육아원 설립부터 1992년 8월 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벌어진 사건이다.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실태는 1987년 1월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수사와 형제복지원 운영진 구속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박 원장은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출소 이후에는 다시 사회복지사업에 복귀하여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8년 11월 문무일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원장 등 피고인들의 혐의 중 특수감금죄와 관련된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하고, 같은 달 27일 1987년 당시 부실 수사에 대해 공식사과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범위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권위주의 통치시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그밖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이다.
진실규명 신청은 올해 12월 9일까지이다. 진실화해위원회와 17개 시청·도청과, 시청‧군청‧구청, 재외공관에서 우편이나 방문접수가 가능하다.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진실화해위원회 누리집(www.jinsil.go.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