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함께 나아가야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 읽기에 앞서, 이 글은 결코 남녀 갈등 ‘촉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 둔다. 아울러, “여성들이여, 나서 싸우자!”하는 선동의 글도 결단코 아님을 밝힌다. 다만 이 글로써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성의 의존적 성향’을 조금이라도 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남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 자립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더불어서 어려울 때일수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인네들은 옷이나 먹거리, 거처하는 곳에 주로 관심(을 둔다)”고 하며 ‘남성적 시각’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면도 보였다.

 

여성도 의리가 있고, 큰 뜻을 품을 수 있으며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또한 근대 교육 기회의 확대로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지니게 됐다(이 점이 이미 출발선이 고르지 않았다는 점을 배태한다).

 

말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언어(言語)는 곧 인식이고, 인식은 행동이 되며, 그렇게 표출된 행동은 관행으로 관례(慣例)로, 또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전해져 넘어갈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또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똑같이’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누이가,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의 딸들이 이러한 말들 속에서 살길 정녕 원하는 것인가, 하여 이 글을 남기는 것이다.

 

 

#사례1

고교시절 한 동무 녀석(여자다)이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녀석은 커트 머리였고 난시(亂視)로 안경을 썼었는데, 일정이 있어 아침에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 하시는 말씀이 “아이, 참 아침부터 재수 없게 안경 쓴 여자를 태웠네. 오늘 종일 일진 사납겠네!”였더란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런 말을 들었는데 상당히 당혹스럽고 난감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사례2

수년 전, 한 사회 커뮤니티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 있어 참여했었다. 거기에서 60대 중후반 정도의 남성 참가자를 알게 됐다. 조가 같아 얘기 나눌 일이 잦은 편이었고 그 또한 이런저런 사회현상을 논의하며 무난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대한민국 여자들은 말이야, 나이가 들어서도 유아기를 못 벗어나.”

“네?”

순간, 너무 놀라서 되물었다. 그때까지 박식하고 일면 젠틀하다고 여겼던 그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은 말이야, 나이가 얼마가 되든지 간에 심리적(정서적)인 유아기에서 벗어나질 못해.”

그는 다시 조금 풀어서 이야기를 반복했다. 들으면서 이유를 물었고, 바로 그 다음에 또 그는 “이영주 씨,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 저쪽에 가면 자판기가 있는데 거기 커피가 아주 맛있대”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마침 점심식사 직후였고 커피가 한 잔 생각나는 참이기도 했음이다. 요는 자신의 커피를 빼서 가져오란 말이었다. 물론 가지 않았다.

 

#사례3

2021년 신년 무렵의 일이다. 첫 번째로 제시한 고등 동창의 일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또 평소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지 뭐하러 차를 끌고 나왔어?”라는 말도 40 중반이 되도록 듣지 않아 ‘그래도 참 다행이네’라고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 날은 칠십 가까이 되시는 분께 처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갔던 차였다.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여쭈니 그는 “아니, 집에서 애나 키우지 뭐하러 나왔어?”라고 했다. 그동안 다행이라고 여겼던, 그래 대학을 졸업하고 오래도록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위 고등 동기 녀석처럼 끔찍한 ‘참사’를 겪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여겼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억눌린’ 여성들의 삶

하이힐(high heeled shoes)의 기원이었다는 전족(纏足), 이로써 여성들은 두 발이 있으나 자기 발로 제대로 서고 걸을 수조차 없었다. 중국 송나라 때 시작돼 명·청 시대 유행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보통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에 전족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약 10cm의 발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하며 이 제도의 목적은 여성을 안방에 가두어 놓고 남성의 성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멀리, 중국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는 또 어떠했는가. 기와집의 구조에서 여성들이 기거하던 안채는 대문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했고 반면, 남성들의 공간이라 일컬어지던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위치했다. 더불어서,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저자(市場) 상황을 모를수록 좋다’ 등의 말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통용됐었다. 전통놀이의 하나인 널뛰기의 기원은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한 여성이 담장 밖의 상황을 보기 위해 고안됐다고 전해진다. 이뿐 아니라 축첩(畜妾), 칠거지악(七去之惡), 환향녀(還鄕女),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등 이루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대중의 감성 구조를 드러낸다는 드라마에서의 여성은 또한 어떠한가.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극 중에서, 아침에 여성의 얼굴에 멍이 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유는 극 중 남편에게 ‘맞아서’다. 이웃들은 아무렇지 않게 부부의 싸움 원인을 묻기도 한다. 현대극에서도 대체로 무언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계획해 실현하는 주체는 남성이고, 감정적이고 보호를 기다려야 하는 존재는 여성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근래 들어서야,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지닌 ‘사회인(社會人)’으로서의 주체로 그려지는 사례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결정권을 가지고 실행하는 주체는 남성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시선을 돌려서, 세계 영화의 중심지라 일컬어지는 할리우드(Hollywood) 상황을 좀 볼까 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여성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자신의 ‘사회적 포지션과 직업적 정체성’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해당 다큐에서 여성 배우들은 언제나 배역을 맡을 때는 자신의 성적 매력도(性 Sexuality)를 부각해야 했음을 성토했다. 자신의 연기력이나 배역 적합도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리벽(Glass Wall)’과 ‘유리천장’으로 둘러싸인 여성들

이미 익숙할 것으로 사료되는 개념인 유리천장(琉璃天障 glass ceiling)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학 용어다. 근래 들어 그 폭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견고한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2013-2020년까지 8년 연속 29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여성가족부가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의뢰해 2021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2246개 사의 성별임원 현황 조사 결과 2020년 8월부터 2021년 8월경까지 국내 상장사의 여성임원 수는 1668명으로 전체 임원 3만 2005명 중 5.2% 수준이었다. 이는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 25.6%의 5분의 1수준이라고 한다.

 

유리벽(glass wall)은 또 어떠한가. 유리천장이 수직적 상승(승진)을 방해하는 요소라면 유리벽은 핵심부서로의 수평적 이동을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즉, 회사에서 리더직급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주요 부서들, 영업-전략기획-연구개발-오퍼레이션 등보다 여성은 홍보, 마케팅, 인사 등 지원 업무 부서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 고정관념도 무시할 수 없어서, 조직에서 리더 역량을 가진 여성은 소위 말하는 ‘기 센 여자’로 비친다는 비판이다. 반면 남성들에게 ‘아름답다’고 불리는 여성은 ‘나약해서 리더 이미지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여성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학습된 성 고정관념으로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도는 충분하나 인식은 ‘부족’

이렇듯 우리 사회에 아직도 보이지 않은 성적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쌓여온 인식 때문으로 판단한다. 제도는? 충분하다. 범위를 넓혀 세계적 차원에서 먼저 보자면 유엔여성기구(UN Women)가 있다. 성평등과 여성의 권한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연합으로 해마다 각국의 성평등 추진체계 명칭 지위 연락처 등을 수집 발표한다. 국내에서는 2021년 말 국무회의를 통과한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으로 남녀고용평등법 등 현재의 인권 관련 법의 처벌 수준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제18178호)은 2021년 11월 19일부터 시행됐는데 이 법의 입법 목적은 대한민국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법의 적용범위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하여, 직장을 제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양성평등 실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함께 나아가야

그렇다면 답은 우리 모두의 인식 제고(提高)에 있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소중하고 ‘살아야 할 존재(한때 엄마의 뱃속에서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죽어야만 했던 생명이 있었다)’이며 남성과 동등하게 존엄하고 대체로 체력을 제외한 많은 부분에서 남성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일층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해서, 비단 여성이라고 남성에게 도움(내조)을 주고 양육과 가사에만 최적화됐다고 판단하지 말고 어떤 면에서는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을 걸림돌이나 평가절하의 근거로 활용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며 다르지만 함께 세상을 걸어 나가는 주체(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는 않음)로 작용하고 인식돼야 할 것이다. 또 여성 자신도 남성에게 무조건 기대거나 의존하려 하지만 말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향상하려는 노력을 절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더불어 같은 여성의 능력을 남성과 비교해 먼저 깎아내리는 사고(思考)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실현돼야만 우리가 모두 평화롭고, 최대한 갈등이 적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아주대학교 제2회 성평등 콘텐츠 공모전 소감문으로 2022년 1사분기 제출했던 글을 일부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