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기_어때] [96] 화성시_용주사龍珠寺

 

[와이뉴스] 신라 말 가지산문(迦智山門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의 9산 선문 중 하나로, 전라남도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를 본산으로 한 종파)의 제2세였던 통일신라 말의 승려 염거화상이 854년(신라 문성왕 16년)에 창건한 갈양사의 옛 터이다.

 

 

고려시대 들어서는 970년(고려 광종21년) 혜거국사가 머물며 수행했고 고려 왕실의 원찰(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이 되어 국가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절의 명맥은 유지됐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됐다.

 

 

조선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의 능을 양주 배봉산(현 서울 전농동)에서 수원 화산(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송산리 일대)으로 옮기고 이름을 현융원이라 했는데 그 이듬해인 1790년 능을 수호하고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능침사찰(왕릉을 수호하기 위해 설치된 사찰)로 용주사를 길양사의 옛터에 창건했다.

 

용주사 낙성식(건축물의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기념하는 의식) 날 저녁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어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하였다고 한다.

 

 

용주사의 실질적인 창건불사는 봉경당 사일스님이라고 한다. 사일스님은 장흥 보림사에 머물 당시 절에 들른 정조에게 불설대부모은중경(부모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설하며 이에 보답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불경)을 전했는데 정조가 그 경을 읽고 감화받았다고 전한다.

 

1900년에 승려 용해(龍海)가 중수(낡은 건물을 새로 고침)했고 1911년에는 30본산(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 불교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전국 사찰을 30개 교구로 나누고 각 교구의 중심 사찰을 '본산'으로 지정했던 제도)의 하나가 되어 수원, 안성, 남양, 죽산, 진위, 음죽, 용인, 고양, 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했다.

 

 

국가유산으로 1964년 국보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과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금동향로, 청동향로, 용주사 상량문(上樑文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공역 일시 등을 적어둔 문서), 전적 수사본(典籍 手寫本 정조가 직접 지은 불교식 가사와 해설), 용주사 병풍,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 오층석탑, 대웅보전 목조 삼세불 좌상, 목조 감실(용주사 창건 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공예품), 지장전 목조 지장보살 좌상과 시왕상 일괄(용주사 지장전에 있는 조선 후기 시대의 불상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인 시왕과 그 외 권속들을 한데 모아 놓은 조각상 또는 불화), 삼장보살도, 중종(中鐘), 남무대성인로왕보살번(南無大聖引路王菩薩幡 용주사의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깃발로,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을 기리는 의미), 전답양안(용주사가소유한 전답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는 재산 문서) 2건이 있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는 천보루(天保樓), 목조불패(용주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불교 의식 용구), 목조소대(木造疏臺 불단에 모시는 의식 용구의 하나), 청동시루가 지정된 바 있다고 전한다.

 

 


-자료참조: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관광공사,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경기역사문화원, 디지털인문학연구소 등
※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