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뉴스] A씨는 40대 후반의 직장인 여성이다. 2025년 6월 초 우연히 듣게 된 A씨의 사연을 본인의 수락을 구한 후 인터뷰 글로 재구성해 게재한다. 다만 익명성 보호를 위해 A씨로 지칭한다.
A씨의 아버지는 20대 후반쯤 당시 20대 중반의 어머니와 연애 결혼을 했고 자녀들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결혼 몇 년 후 A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불편해졌고 신체적 장애를 갖게 됐다. 그 후로 A씨의 아버지는 폭력이 더욱 심해졌다. 아버지의 어머니를 향한 폭력은 결혼 직후 시작됐다고 한다. 그 당시 이혼은 여성에게 큰 흠이었기에 A씨의 어머니는 쉽사리 이혼을 결정할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해진 후 아버지의 폭행은 매우 심해졌고 아이를 이미 몇이나 낳은 A씨의 어머니는 ‘견디거나 잠시 아이들과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도, 저녁에 술을 마시고 귀가하고서도 A씨와 형제들을 비롯해 어머니에게 아무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했다. A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명분’으로 열여섯 살 나이에 집을 떠났다. 그래도 편하지는 않았다. 집에 남은 어머니와 동생이 여전히 아버지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주말 책임감으로 집에 갔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가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가정 형편이 윤택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일과 학업을 병행했고 버는 돈의 일부는 매달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이 되고 A씨는 바로 직장에 취업했다. 여전히 수입의 일부를 집으로 송금했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독립을 한 후로 본가에 자주 가지는 않아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술 마시고 가족들을 때리는’ 모습이 거의 전부였다. 해서 그녀의 형제들과 그녀,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를 불쌍히 여겼다고 한다. 당신의 몸이 불편하니 아이들과 자신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과 한때 사랑한 남성인 아버지를 향한 인간적 연민이 있는 것 같다고 A씨는 전했다. A씨의 형제들이 장성해 모두 분가를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나서 어머니께 이혼을 수차 권했으나 어머니는 한사코 고사했다. 위와 같은 이유였을 거라고 한다.
A씨의 형제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적지 않게 집에 돈을 보내줬다. 그러다 A씨의 아버지는 지병을 얻게 됐고 그 후로 수년 동안 병원 침대에서 치료와 연명을 하다 수년 전 돌아가셨다. 워낙 병원 치료가 길기도 했고 이후 요양원에서 연명 기간도 길어서이기도 해서인지, A씨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그렇게까지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그에게 맞을 때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죽이고 싶었던’ 아버지라고도 했다.
많이 미웠던 아버지였지만 A씨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A씨의 형제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신 A씨는 자신의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10대 초반부터 머릿속으로 무척 나쁜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고 전했다. “사람을 조각조각 잘라서 죽여 버리고 싶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삼십여 년 해오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냐고 묻자,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이라고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한 시간에도 십수 번씩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충동을 참아내느라 A씨는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심리치료도 두통약도 소용 없었다. 전혀 듣지 않았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계속해서 어머니와 자신의 형제들을 때렸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차라리 고아원에 ‘갖다 버렸으면’ 그렇게까지 맞고 살지는 않았어도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아버지의 타계 후 A씨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집착을 한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한다. 심리적 기둥의 역할은 고스란히 A씨와 형제들 몫이 됐다. A씨의 형제들은 이 역할마저도 수용했다. 어머니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두루 살핀다. 그러면서도 A씨는 심리적 피로감을 호소했다. 때로는 어머니의 집착이 버겁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향한 경제적 심리적 지원과 책임감과 의무로 A씨는 오래된 연인은 있으나 미혼이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고서도 어머니를 보살피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다고 한다.
A씨는 위와 같은 두통에 매일 시달리면서도, 가끔은 아버지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자식으로서 사랑했었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과연 사랑했다면 자신과 형제들과 어머니를 왜 그렇게 심하게 때렸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후 몇 년 이제 아버지에게 이전만큼 큰 미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만큼의 아버지에게의 인간적 연민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의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몇 번이고 아버지를 인간적으로 이해해 보려고도 하였으나 도무지 되지 않았다. A씨는 여전히 한 시간에도 십수 번씩 찾아오는 ‘위험한 충동’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