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기_어때] ㉗평택시_정도전 단소(壇所)

 

[와이뉴스]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가이자 학자(1342-1398)이다. 선향(先鄕)은 경상북도 영주, 출생지는 충청도 단양 삼봉(三峰)이다.


문인이면서 동시에 무(武)를 겸비했으며 성격이 호방해 혁명가적 소질을 지녔고, 천자(天資)가 총민해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군서(群書)를 박람해 의론(議論)이 정연했다 한다.


정치사상체계는 주자학 기반이지만, 이단을 일부 포용하는 민족의식적 성격을 띠었다고.

 


아버지로부터 노약 노비(老弱奴婢) 약간 명을 상속받았으나, 오랫동안 유배 유랑 생활을 보내며 곤궁에 시달렸다. 부계혈통은 향리의 후예로 아버지 때에 중앙 관료 벼슬을 했고,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연안 차씨(延安車氏) 공윤(公胤)의 외예 얼속(外裔孽屬)이었으며, 모계에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다고.

 

이러한 혈통으로 구가세족이나 명분을 중요시하는 성리학자들에게 백안시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시대에도 3노가(奴家)의 하나라는 평을 받았다고. 

 


1360년(공민왕9) 성균시에 합격, 2년 후 동 진사시에 합격해 충주사록(忠州司錄) · 전교주부(典校注簿) ·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를 역임했다.


1370년 성균관박사로 있으면서 정몽주 등 교관과 명륜당에서 성리학을 수업 강론했고, 이듬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되고 5년간 전선(銓選)을 관장했다.


1375년 권신 이인임 등의 친원정책에 반대하다 전라도 나주에 유배됐다. 1383년 9년간에 걸친 유배생활을 마치고 이성계를 찾아가 인연을 맺었다. 1388년 밀직부사로 승진해 정치개혁안을 건의하고 구세력을 제거해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1392년 이성계가 사냥 중 말에서 떨어진 사건을 계기로 정몽주, 김진양 등의 탄핵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조선의 건국을 기획하고 구현해냈으며, 조선 개국 일등공신으로 주요 관직을 두루 지내고 정권과 병권을 장악했다. 


개국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한(漢)나라 장량(張良)에 비유하며, 한고조(漢高祖)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했다며 실질적 개국 주역은 자신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1398년 요동 수복계획을 추진하던 중 세자책봉 문제로 불거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주살당했다.


묘소는 실전됐고, 후손들이 조성한 단소(壇所)가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 있다.


1411년(태종11) 폐서인이 됐고, 복권은 흥선대원군 집권기였다. 정도전의 공로를 인정했던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5년(고종2) 대비 조씨가 공신 칭호를 돌려줬으며, 1870년 고종이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고. 1912년 문헌사(文憲祠)에 제향됐고, 1922년 후손들이 정운경 묘소 아래에 모현사(慕賢祠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를 짓고 정운경과 정도전의 위패를 봉안했다. 


저서로 <조선경국전> <경제의론> <감사요약> <고려국사> <문덕곡> <몽금척> <삼봉집> <불씨잡변> 등이 있다.


최상용 박사(정치학)는 "정도전 선생은 세계사적 수준에서 동시대의 어떤 정치가와 비교해도, 한국사에 등장한 많은 정치지도자들과 견주어도 지력이나 정치력 양면에서 그 탁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도전 선생은 냉혹한 권력투쟁 과정에서도 확고한 정치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권력의 제도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공동체인 조선왕조를 건설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평했다.


이치키 쓰유키고 교수(히로시마대학 대학원)는 "이조 초기 주자학의 언설이 불교론 방면에서도 사회적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고 나간 사람이 바로 삼봉 정도전 선생이었다"고 했다. 


조선 초기에 삼봉 선생이 지은 송도가(頌禱歌) 신도가(新都歌)를 소개한다.

 

녜ᄂᆞᆫ 양쥬 ᄭᅩ올히여 디위예 신도형승이샷다
ᄀᆡ국 셩왕이 셩ᄃᆡ를 니르어 샷다
잣다온뎌 당금경 잣다온뎌 셩슈 만년ᄒᆞ샤
만민의 함락이샷다 아으 다롱다리
 한강슈여 뒤흔 삼각산이여
덕듕하신 강산 즈으메 만세를 누리쇼셔

 

옛날에는 양주 고을이여  그 경계에 새로운 도읍으로서의 지세와 풍치가 빼어나도다.  
개국 성왕께서 태평성대를 이룩하셨도다.    
도성답도다 지금의 경치가 참으로 도성답도다. 
임금께서 성수만년하시니 만 백성 모두의 기쁨이로다. 
아으 다롱디리 앞은 한강물이요, 뒤에는 삼각산이라. 
덕이 많으신 이 강산 사이에 성왕께옵서 만세를 누리소서. 

 

 

 

-자료참조: 경기도메모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디지털영주문화대전, 우리역사넷 등 
※촬영: 202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