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기_어때] ④화성시_남이장군묘

 

[와이뉴스] 경기도기념물 제13호다. 남이 장군은 조선 전기 무신(1441-1468)이었다. 의령 남 씨로 태종의 부마 남휘의 손자다. 세조 3년(1457) 무과에 장원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세조 13년(1467) 이시애의 반란이 일어나 토벌군을 지휘하고 반란 후 이뤄진 건주 여진 토벌에도 출전해 공을 세웠다. 빼어난 무예 실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세조 14년(1468)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시기하던 유자광의 무고로 역모죄로 거열형에 처해진다. 순조 18년(1818)에 후손 우의정 남공철의 청으로 관직과 작위가 복구됐으며, 충무공 시호를 받았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波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에게 먹여 마르리라,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불러주리오)
남이 장군이 26세에 여진족을 정벌하고 두만강 변에서 읊은 시라고 전해지는데, 유자광이 ‘未平國(미평국)’의 ‘平(평평할 평)’을 ‘得(얻을 득)’으로 바꿔 역심이 있다고 밀고하는 빌미로 활용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은 궁궐 안에서 숙직을 하던 차에, 혜성이 나타나자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라는 말을 모함한 것이라고 전한다. 

 

 

-자료 참조: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문화재단 등.
※ 촬영: 2023.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