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영화] ‘이념을 초월한 파격적 로맨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와이뉴스] 사랑 얘기다. 정확히는 사단장 부인과 사병의 일탈 로맨스다. 더 상세히는 북한을 배경으로 한 상사의 아내와 부하의 애정을 다룬 영화다. 배경을 북한으로 한 점이 이채롭지만, 상세 줄거리를 파악한다면 이는 당위성을 도출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해당 영화는 중국 인민해방군 퇴역 군인 출신 작가 옌롄커의 2005년 원작 동 제목 소설을 각색해 장철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제작된 2022년 영화라고 전한다. 조성하, 지안, 연우진 등이 주연을 맡았다.

 

남자주인공 무광은 모범사병으로 사단장 사택의 취사병이 된다. 그는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 생각에 승진하여 출세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두고 있다. 사단장의 젊은 아내 수련은 매사에 성실한 무광에게 매료되어 남편 사단장이 한 달간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 무광을 유혹한다. 결론은, 둘은 금단의 강을 건너게 된다.

 

19금 영화이긴 하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오히려 연인들에게는 둘의 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분량을 나눠 보자면, 무광이 사단장의 사택에서 취사병으로 ‘활약’하는 장면과 왜 무광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상사의 눈에 띄어야만 했었는지를 보여주는 고향에서의 결혼 과정 및 장인과 아내의 압박, 본격적으로 발전한 둘의 관계, 그 후의 이야기로 이뤄진다.

 

이 중 성실하고 신념이 강한 무광이 수련이 내민 손길을 잡기 위한 당위의 과정이 다소 길게 배치된 듯하다. 외려 관객들은 이미 둘이 사랑에 빠질 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이 과정을 작품에서처럼 길게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차라리 그 일련의 과정들을 지금처럼 세세히 표현할 거라면 둘이 헤어지면서 무광이 떠나는 장면과 시간이 흐른 후의 시점 사이에 수련과 처음 만나는 장면과 오버랩 되게 하면서 배열했더라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한다.

 

더불어, 장을 보고 오던 중의 무광이 사택을 지키는 부하 병사에게 수련이 부탁한 잣을 건네는 장면을 사택 2층 자신의 방에서 수련이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장면 또한, 이미 그 앞 장면에서 수련이 무광을 눈여겨볼 때 이와 같은 망원경 신(scene)이 나왔었으므로 굳이 복선처럼 깔지 않았어도 됐었을 듯하다. 이 장면과 무광이 현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수련을 만나고 떠나는 길에 망원경으로 사라질 때까지 무광을 바라보는 장면을 연결시키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금은 거추장스럽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소한 연인 간의 투닥거림을 위한 기폭제 역할일 수도 있다.

 

영화 ‘화양연화’의 여주인공 장만옥을 연상하게 하는 수련과 언뜻 ‘색계’의 남자주인공 양조위가 연상되기도 하는 무광은 오마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오히려 영화의 독립적 색채를 잃는 것 같은 인상도 있기는 했다.

 

‘인민군 복무 헌장’ 또한 인민에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이 인민에 수련도 포함된다는 암묵적 제시가 되는 듯하고 또 제목을 끌어내기 위해 다소 직접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제외하고는 소재의 배경도 색다르고 2시간 27분의 상영시간도 무난했다. 전체적으로 구성과 대사, 호흡이 괜찮은 편이며 감상하기에 구성상 크게 불편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불필요한 대사와 장면을 최대한도로 배제한 것으로 보이며 둘의 데이트 장면 또한 너무 과하지 않게 배치한 것으로 해석된다.

 

배경을 북한으로 한 것은, 남한에서였더라면 가능했을 둘의 재혼이 북한에서는 이혼 절차의 복잡성과 당국의 강제 노동 등의 처벌 등으로 사실상 불가했을 것이므로 잠시의 소낙비처럼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두 남녀를 그리고자 했다면 구성적 요소로서 역할을 했으리라고 판단된다.

 

또 사단장의 지위에서 ‘한낱 취사병일 뿐’인 무광을 제거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인데 마지막까지 남자주인공 무광을 살려두는 것은 수련이 무광을 살리기 위해 무던히 애썼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하게 한다.

 

여주인공은 “사단장은 사단장일 뿐, 남자는 아니에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수련 역시 사단장의 눈에 띄려 김일성 어록을 사단장 앞에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울 만큼 공을 들였으나, 그녀의 말에 의하면 사단장은 사선에서 사타구니에 총격을 받았고 이에 의해 여주인공의 결핍이 발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사단장이 출장에서 돌아와 깨진 유리 조각을 밟았을 때 기민한 직감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분명 인지했음에도 무광에게 후하게 포상하고 그를 살려둔 것 또한 일견 일리를 갖는 처사일 수도 있겠다.

 

무광과 수련은 사단장의 사택에서 사단장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구의 간섭도 없이 애정 행각을 벌인다. 종당에는 실수로 깨트린 수령의 액자를 둘 다 거듭하여 북한식 ‘성서’와 관련 다른 물건들까지도 훼손하며 서로의 사랑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결국 둘은 헤어진다. 시점은 사단장이 사택으로 돌아오는 때였다.

 

이제부터 영화의 구성과 다른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스토리상 이 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주의 공간이기에 가능했다. 만약, 법치주의인 남한이었다면? 수련은 위계에 의한 간음 및 공무집행방해, 직장내괴롭힘, 근로기준법 위반, 성폭력, 기물파손 등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물론 무광이 수련에게 완강했을 때의 상황이다. 또 사단장에게는 유책 배우자로서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의 대상이 된다. 증거는 명백했다.

 

무광 또한 군인으로서 근무를 태만히 했으므로 군형법상 징계 및 처벌의 대상이 된다. 또 사단장의 시점에서 보자면 무광은 상간남이며 이로써 가장파탄의 책임을 물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되며 고향에 있는 자신의 아내에게 또한 수련과 마찬가지의 청구를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둘의 위치를 가능하게 해준 사람이 사단장이었는데 이를 무참히 짓이겼다는 점에서 사단장이 감내해야 할 배반감은 굉장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만약, 보통의 방식으로 아이를 갖기 힘든 사단장 부부가 사전에 모의한 후 무광을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라면, 무광 또한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은 15년 후로 옮겨진다. 공장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무광, 현장에서 작업 지시를 하다 떨어질 뻔한 수령의 액자를 본인의 몸을 던져 막아낸다. 수련은 무광이 아닌 사단장 곁에 남았었다. 이 두 점에서 결국 둘은 서로에게 끌리긴 했지만, 이념과 본 배우자를 더 신임하고 아낀 것이라고 본다. 무광이야 수련의 선택이 그러했고 또 자신의 선택으로 가족들 모두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으므로 피동적이라 했을지라도 결국 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이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무광은 수련을 찾아간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며칠 후 수련 또한 남편과 아들을 두고 나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서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다수의 해석은 수련이 무광을 찾아갔을 것이라고 한다. 이 점은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무광을 찾아갔을지라도 잠시 만났을 수도 있고, 사택에서 외출용 구두도 없이 살아왔으므로 본인의 자유를 찾아 떠났을 수도 있겠다.

 

온전한 해석은 보는 이의 가치관과 각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