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뉴스] 대상 판결: 대법원 2024.12.19. 선고 2022다289051 전원합의체 판결(차별구제청구등)
사건 쟁점: 휠체어를 통해 이동하는 지체장애인이 국내 소매점(편의점등) 1층 문턱을 통과하기 위해 필수적인 경사로 설치를 하지 않아도 이를 법령 개정등을 통해 규제하지 않은 국가가, 해당 장애인들에게 대위책임을 지는지 여부(적극)
피 고: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외 3인
원 고: 원고 1 외 3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외 6인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22. 10. 6. 선고 2022나2009024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에 대하여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을 각 파기하고, 제1심판결 중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 1, 원고 2의 패소 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1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8. 11. 3.부터 2024. 12. 19.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사안 개요: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는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이동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의무를 부담하는 대상시설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위임에 따라 구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의 (1)은 공중이용시설 중 ‘수퍼마켓ㆍ일용품(식품ㆍ잡화ㆍ의류ㆍ완구ㆍ서적ㆍ건축자재ㆍ의약품ㆍ의료기기 등을 말한다) 등의 소매점’에 대해서 그 바닥면적이 300㎡ 미만인 경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같은 법 시행령이 1998. 4. 11. 시행된 이래로 이 사건 쟁점규정의 내용은 24년 넘게 동일하게 유지됐다. 이 사건 쟁점규정이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장애인의 접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무효라는 취지의 제1심판결이 2022. 2. 10. 선고됐고, 피고는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해 소규모 소매점 중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되는 바닥면적 기준을 기존의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했다.
사건 판단: 제1심법원은 위와 같은 변론 과정을 거친 끝에 이 사건 쟁점규정이 모법의 위임 취지에 반해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장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ㆍ무효의 규정이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판단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판결 후 약 2개월 만에 피고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했다.
이 사건 쟁점규정을 포함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이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됐고, 이에 따라 소규모 소매점의 경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되는 바닥면적 기준이 기존의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됐다.
그 외 휴게음식점, 제과점, 이용원, 미용원, 목욕장, 의원, 한의원 등 위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에서 규정한 공중이용시설에 대하여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부칙(2022. 4. 27.)은 이 사건 개정규정을 2022. 5. 1.부터 시행하도록 하되(제1조), 그 시행 전에 설치된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 관하여는 개정 전의 규정에 따르도록 했다(제2조 제1항). 그 결과 이 사건 개정규정이 시행됐음에도 기존 소규모 소매점을 비롯한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의 대부분은 개정 전의 규정을 적용받게 되어 여전히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존 건물에 설치된 수많은 소규모 소매점 등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 대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됨으로써 광범위한 제한 상태가 이 사건 부칙조항을 통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가 이어지고 있던 기간 동안 장애인이 받은 정신적 고통의 무게가 국가배상을 통해 위자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보아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르게 됐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을 바닥면적 등 규모에 따라 일부로 제한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유: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의 문제는 ‘쇼핑’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간의 본질로 간주되는 존귀한 인격 주체성을 의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기책임 능력이 있는 인격체로서 스스로 결단하여 그 결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헌법 제11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니고,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각종 시설과 설비는 대부분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마련돼 있어 장애인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이를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스스로 결단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는 우리 헌법이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인간의 존엄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에 스스로의 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즉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같은 조 제5항은 신체장애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해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고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 참조).
이처럼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로서, 비록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앞서 살펴본 헌법 규정들로부터 도출되는 기본권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장애인의 접근권이 접근에 대한 방해의 금지를 구하는 소극적ㆍ방어적인 수준을 넘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私人)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국가는 제한된 재정 능력과 사회ㆍ경제적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이 적절히 보장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헌법상 보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회는 1997. 4. 10.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을 제정하여 이를 1998. 4. 11. 시행하였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같은 법 제1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 즉 접근권을 가진다고 명시하였으며(같은 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였다(같은 법 제6조).
국회는 더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을 2007. 4. 10. 제정하였고, 2008. 4. 11.부터 시행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통하여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데(같은 법 제1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지되는 차별의 범위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ㆍ설비ㆍ도구ㆍ서비스 등 인적ㆍ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방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같은 법 제8조).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ㆍ보호 및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통된 노력과 합의를 반영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제1항은 당사국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같은 협약 제9조 제1항은 대중에게 개방 또는 제공된 시설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당사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법률로 행정청에 특정한 사항을 위임했음에도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치국가 또는 법치행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위법함과 동시에 위헌적인 것이 되고(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3561 판결 참조), 이는 행정청이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받은 사항을 전혀 입법하지 않은 경우는 물론 그 법률이 위임한 사항을 불충분하게 규정함으로써 법률이 위임한 행정입법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 제4항 또한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단계적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그 위임에 따라 제정된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대상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 해당하는 대상시설 중 2009. 4. 11. 이후에 신축ㆍ증축ㆍ개축된 시설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 또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되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범위로 한정됐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장애인이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초석이 되는 헌법상 기본권의 일종이고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권리협약은 피고에게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거듭하여 부과했다. 따라서 행정청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할 재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량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4조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등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현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이 사건 쟁점규정이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사회ㆍ경제적 발전 정도 및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러한 규정은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거나 장애인의 접근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고자 한 모법의 위임 취지를 도외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행정청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강제되는 대상시설을 확대해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해당 행정입법을 개정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ㅁ 관련 법령: 헌법 제7조 공무원 개인의 국민에 대한 책임
제27조 제1항
제29조 국가배상책임 국민의 기본권 규정
제10조 제2문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국가배상책임
제23조 제3항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재산권이 제한된 국민에 대한 정당한 보상 의무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
※ 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관 김상환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박영재, 주심 대법관 이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