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 산재 투쟁 10년 만에 산재 인정 한혜경 김시녀 씨

고3 취업 나간 첫 직장이었다. 만으로 18살. 집에서도 반색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이었기에. 첫 월급은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 그렇게 성실히 모든 돈으로 2년 만에 작은 집도 샀다고.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혜경 씨는 입사 3개월 만에 생리불순과 피부 질환을 앓게 되고 병원 치료와 투약을 하며 햇수로 6년을 근무했다. 퇴사 후 4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정형외과와 정신과를 제외한 모든 병원을 전전하며 얻어낸 결과였다. 그녀의 나이 28살.

아프기 전 한혜경 씨는 명랑한 딸이었다. 자신은 상고를 나왔을지언정 남동생은 대학교 보내야 한다며 자신의 월급을 동생 등록금으로 고스란히 바쳤다. 자신은 가정을 꾸려 현모양처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혜경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납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채 생산직으로 일하다 퇴사한 지 4년 뒤인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은 2009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그 후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그러다 2018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신청 해 앞선 5월 30일 산재인정 통지를 받았다.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사무실에서 앞선 21일 오후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와 한혜경 씨를 만나봤다.

△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오른쪽) 어머니 김시녀 씨 앞선 21일 ‘반올림’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혜경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납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채 생산직으로 일하다 퇴사한 지 4년 뒤인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은 2009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그 후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그러다 2018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신청 해 앞선 5월 30일 산재인정 통지를 받았다. 그녀는 “자기 몸은 자기가 관리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회사만 너무 믿지 말고 사비를 들여서라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일하라”고 당부한다.

■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의 어머니이시다. 근로복지공단이 기존 결정을 번복하고 산업재해 승인신청 10년 만에 산재 인정을 받으셨다. 그간의 소회는.
- 10년 만에 산재인정을 받았는데 그 세월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다. 삼성과 직업병 인정 투쟁을 해오면서 혜경이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을 때 긴 시간을 끌면서도 개인의 질병이라는 판결을 받고 3심까지 가면서 패소 당했을 때 그 심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이번에 재신청 해서 인정을 받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입사 3개월 때부터 생리불순 증상이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화학물질을 사용할 거라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일등 가는 기업 삼성이니 설마 했었던 거다. 삼성, 현대, 엘지 등 대기업으로부터 학교로 공문이 왔을 때 삼성에 들어가니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랬었던 삼성에 들어가서 이게 직업병이라고 의심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몸이 안 좋아져서 퇴사를 했다. 생리불순이 일어나 병원에 서 호르몬제 주사를 맏고 약을 장기간 복용하니 부작용으로 몸이 붓고 행동이 둔해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그 다음부터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생리가 아예 안 나와 퇴사를 하게 됐다.

1995년 8월경 입사해 2001년경 퇴사했으니 햇수로 6년 정도 근무했다. 입사하면서 퇴사할 때까지 한 라인에서만 일했다. (당시만 해도)생리가 없어서 피부에 트러블이 일어났지만 구체적 통증이 수반된 것은 아니었다.

■ 한혜경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납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채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퇴사한 지 4년 뒤인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이은 2009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그 후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으며 2018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신청을 해 앞선 5월 30일 산재인정 통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외에 그간의 정황을 부연해주신다면.
-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그 후 장애가 남고 하니까 재활치료를 꾸준히 해야 했다. 수술은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했고 집은 춘천이니 퇴원해서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계속했다. 재활병원 사회복지과 선생님이 너무 젊은 애가 이런 장애가 있으니 반올림을 알려주셨다. 반올림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 이종란 노무사님을 알게 되고 싸움이 시작되면서 산재신청 불승인 받고 1차, 2차 패소됐다. 1차 행정소송에서는 법정 공판도 열렸는데 고법에서는 공판조차 열리지 않았다.

또 녹색 회로기판을 만들 때 납성분만 취급했던 것이 아니라 아세톤, 벤젠, 유기용제 등 여러 가지를 취급했는데 왜 유독 납성분 하나만으로 다툼이 됐는지 억울했었다. 혜경이가 일했던 현장이 (포함된) 사업장이 얼마 후 없어졌다. 역학조사를 했었다면 어디서 무엇을 갖고 했기에 혜경이가 납 노출이 적었고 개인적 질병이라고 판정 났는지 너무 궁금했었다.

같이 근무했었던 동료들은 유산율이 높았다고 들었다.


■ 처음 한혜경 씨의 질병이 직장과 관련됐다는 것을 아셨을 때 심정은 어떠하셨는지. 당시 삼성 측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소송 중에 회유하려 수차례 찾아왔었다고도 하는데.
- 혜경이가 계속 그렇게 아팠다. 어깨나 (그런 곳이 아프다고 했다). 정형외과 정신과만 빼놓고 다 다녔다. 그래도 계속 아프다고 했다. 감기약을 먹고 나면 조금 괜찮아졌다. (감기약에) 진통제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손톱을 깎으려 하는데 손에 힘이 없다고 하고 (걸을 때) 가재걸음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걸었다. 그 증상이 6-7개월 이어졌다. 상황이 그러하니 돈이 들어도 병원 가서 MRI를 찍어보자고 결정했다. 의사 선생님은 종양이 워낙 커 척추에 물이 6-7센치 차 있어 시신경이 눌려 걸음걸이가 그렇다고 설명했다. 앞이 깜깜했었다.

처음에 혜경이 MRI 찍고 뇌종양이라는 판정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말로 하겠나.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참 후 삼성 인사과에서 혜경이 근황이 궁금하다며 전화했다. (전화한 사람은) 혜경이가 입사했을 때 자신이 인사과에 있었다고 했고 모 과장이라고 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한 번 춘천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공식적 만남만 갖고 개인적으로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반올림을 해체하려 했던 삼성의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다.

그 후 삼성에서 중재역할 및 해결을 위임받은 법률사무소 노무사가 찾아왔다. 일이 없어서 (삼성 측의 의뢰를 받았다며) 명함을 주면서 저희한테 (연락했다). 삼성에서 10억 원을 줄 테니 일단 반올림에서 빠지고 사회 어느 단체와도 손 안 잡는 조건을 제시했다. 집으로 세 번인가 왔었고 동네 근처에서 총 6-7번인가 만났었다.

사실 그때 너무 힘들고 처음 산재 신청할 때 산재인정이 빨리 되겠지 했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으뜸 되는 기업이니 삼성이니 다르겠지 생각했었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패소되고 위협감을 느꼈다. 법원에 가서도 과연 빨리 해결이 될지, 삼성이라 오히려 대기업이라 더 늦게 되는 거 아닌가 위압감을 느꼈다. 수술하면서 아파트도 팔고 그러다 보니까 형편이 여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10억 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였다. 처음에는 혜경이에게 받는다는 결정은 말 안 했다. 혜경이 남동생과 의논해 받기로 하고 혜경이에게 말했더니 혜경이는 자신과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된다며 결사반대했다. 그 후 잘못을 깨닫고 인터넷에 올리고 그러면서 그렇게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반올림에 따르면 반올림을 통해 전자산업 직업병 산재를 신청한 142명의 노동자 중 현재까지 37명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고 47명은 심사·소송 중이라고 알고 있다. 그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라면.
- 혜경이 혼자서 싸웠다면 상상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거다. 대기업에서 일하다 다쳤을 때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면 평생 노동자들은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혜경이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반올림 등 시민단체의 도움이 있었기에 혜경이가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준다면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같이 외쳐줄 거라 믿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주기 바란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조승규 공인노무사 산업재해 관련 협약 원칙 등을 설명하고 있다. 조승규 노무사는 “한혜경 씨의 사례가 그간 반올림이 해왔던 일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10년 전부터 똑같은 얘기를 해왔지만 들을 수 없었던 사회가 두 분의 투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 산업재해와 관련해 한국이 비준한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은 제115호 방사선 협약, 제139호 직업암 협약, 제155호 산업안전보건협약, 제170호 화학물질 협약, 187호 산업안전보건 증진체계 협약 등이 있지만 사실상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관련 견해는.
- 조승규 노무사) ILO 화학물질 협약 관련해서는 원칙상 기본적으로, 위험성을 인정해야 하고 노출이 어떤 기준을 넘기느냐 문제가 아니다. 노출 기준 이하라도 최소화해야 한다. 사실 제거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것이 원칙이다. 삼성은 항상 반올림 문제 제기에 대응을 해왔을 때 노출 기준 미만이니 문제 없다(는 식이었다), 근로복지공단도 노출 기준 미만이니 노출이 얼마 안 된다, 그러니 직업병 아니라고 (했다), 이런 것이 (본질적인) 문제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이다.

화학물질 관련해서 현장 노동자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작업장에 비치된 물질안전보건자료다. 이번에 개정은 됐는데 개정 전에는, 사업장에 비치는 돼 있는데 집에 가져가서 보는 것은 안 된다는 태도였다. 그러니 실제로 얼마나 보겠나. 직업병이 났을 때 가져가서 상세히 검토하는 것은 불가했다.

2018년 반올림 와서 처음 사례가 한혜경 씨 재신청이었다. 진행하면서 뜻깊었다. 큰 사건이기도 하고 그간 반올림이 해왔던 일들을 이 사건 하나로 집약적으로 알 수 있었다. 10년 전에 주장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이 위험을 얘기했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가 들을 수 없었는데 두 분의 10년 간 투쟁으로 바뀌었다.


■ 무엇보다 궁금한 사안이다. 산재 결정 후 한혜경 씨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한혜경 씨의 건강 상태는 어떠하신지 궁금하다.
- 28살에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혜경이가 허리가 가끔 아프거나 그럴 때가 있고 움직임이 불편한 상황이다. 혼자 걷거나 식사는 어렵다. 앞으로 좋아지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기대할 수 없다. 매일 재활치료 하는 것은 더는 근육이 굳지 말라는 취지에서 하는 거다. 아프고 나서는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또 무엇으로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
- 앞장서서 같이 싸우던 피해자들이 8명 있었다. 한 식구 같은 사람들이었다. 같이 울고 웃고 그 많은 비를 맞고 했던 그런 고통을 같이 겪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삼성의 6명 우선 보상 회유에 등을 돌렸을 때 힘들었다.

촛불 혁명 때 이재용 부회장 구속 재판에 참석했을 때 태극기 부대가 혜경이한테 “병신 보고 병신이라고 얘기하는 게 (뭐가 문제냐)” 그 말을 법원 건물 안에서 내 딸한테 했고 그 트라우마는 아직 갖고 있다.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반올림을 비롯한 사람들이 힘을 연대해줬기에 가능했다. 헌신적인 사람들이다. 세상에 이런 천사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 한혜경 씨가 직접 그린 카네이션을 새겨 넣은 컵.

■ 아직도 국내 및 세계에는 위험한 물질 혹은 상황에 노출된 채 생계를 위해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관리 감독하는 업체 관계자 및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께 전하실 말씀이라면.
- 한혜경 씨) 자기 몸 자기가 관리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거다.

- 김시녀 씨) 삼성에 입사했을 때 최소한 너희가 쓰는 물질이 너희 몸에 어떤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얘기해줬으면 자신의 몸을 관리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건강검진을 받아도 개인에게 통보가 아예 없었다. 결과를 전혀 통보하지 않았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든 노동자가 회사를 너무 믿지 말고 사비를 들여서라도 1년에 한 번이라도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일하라고 혜경이는 당부한다.

△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사무실.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더 전하실 말씀은.
- 이렇게 실습 나가서 노동자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삼성 백혈병 문제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산재 피해자들이 모여 펼치는 활동이 있다. 실습을 나가서 피해당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 모두 죽음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사자들은 알기 힘들었다. 앞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없애는 데 힘쓰고 싶다.

한혜경 씨 김시녀 씨 인터뷰 영상 바로 보기 >>  https://tv.naver.com/v/8908122

/ 이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