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영화] 잔잔하고 감동적인 B로맨스* ‘시맨틱 에러:더 무비(2022)’

극본 제이선 감독 김수정 원작 저수리 <시맨틱 에러>

 

[와이뉴스] 오전 8시 30분 기상, 45분 운동, 58분 양치, 9시 16분 등교 준비, 25분 블랙홀릭(커피) 구입, 30분 세 번째 창가자리 확보. 하루를 분단위로 살아가는 남주 추상우(컴퓨터공학과3·23). 언뜻 비슷해 보이는 체크무늬 남방을 면밀하게 구분해 선정하고, 똑같아 보이는 검은색 모자를 세상 신중하게 고르는 그야말로 티피컬한 타입이다.

 

이런 그에게 다소 ‘파격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어느 날 나타난 ‘성실한 또라이’ 장재영. 모든 것이 정해진 프로그램과 회로대로 풀어가야 하는 전형적인 공대생 추상우에게 ‘똘끼’만큼 실력도 뛰어난 장재영이 나타나며, 추상우의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에러’를 맞는다. 이 둘의 꽤 깊은 내적 고심과 고뇌를 거쳐 펼쳐지는 잔잔하고 감동적인 브로맨스가 다가오는 당신의 가을을 물들일 것이다.

 

한 명은 향수병, 한 명은 이모할머니의 장례. 조 활동을 하지 않은 채 대리출석까지 인정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는 조장 추상우는 발표 시에 제작진 명단에 본인 이름만 적는다. 추상우 전화기에 ‘무임승차’로 저장된 다른 조원들이 문자로 불만을 토로하는 가운데, ‘무임승차3’ 장재영은 직접 추상우를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곧 미국 유학을 앞둔 그는 졸업학기에 위 발표 불참으로 F학점을 받아 지장이 생긴 것이었다.

 

 

군 휴학 후 가을학기 복학, 3년 내리 과탑, 과 활동 동아리 안 함, 단톡방에도 없음, 심지어 그와 얘기해 본 게 전생처럼 여겨질 만큼 목소리조차 듣기 힘든 캠퍼스 아싸 추상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한국대학교 인기 탑이자 자타공인 ‘성실한 또라이’ 장재영(시각디자인4)은 손수 그의 인상착의를 그린 몽타주 현상수배 전단을 학내 곳곳에 돌린다.

 

그러던 차, 추상우와 모바일게임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취업에 성공해 중도 하차해야 했던 친구의 부탁으로 장재영은 개발자를 만나게 되는데, 개발자의 이름이 바로 그토록 찾고 찾았던 추상우였다. 장재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데.. 그가 싫어하는 색과 싫어하는 사람(장재영), 싫어하는 장소(장재영 반경 10미터 이내)에 반드시 나타나는 방식으로 그와 ‘놀아준’다. 이로써 장재영과 추상우는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사이가 돼 버린다. 나머지 스토리는 직접 확인하시길.

 

추상우의 같은 과 여자 후배 류지혜, 그런 류지혜를 좋아하는 장재영의 남자 후배 고형탁, 장재영의 여자친구를 맘에 들어하기도 했던 장재영의 여자사람 친구 최유나. 이들의 ‘도움’으로 결국 연인이 되기로 한 둘.

 

 

사실 아무 ‘고심없이’ 성립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기에, FP인 재영과 TJ인 상우의 연애는 그 나름의 혼돈과 고통을 거쳐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둘의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섬세하다. 기존 퀴어영화였던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처럼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자신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강렬함을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감정 묘사와 스토리 구성이 세밀하고 탄탄하다. 여기에 위에 언급했던 주변 인물들의 ‘반응’ 또한 둘의 감정을 잇는 데 ‘도움’을 준다. 그들이 두 주인공에게 오작교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구태의연하게 ‘동성(同性)’을 매개로 그 둘을 질타하거나 혐오를 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어찌 보면 세련되게), 둘의 미묘한 감정들을 캐치하고 그대로 흐르도록 둔다. 이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풋풋함이다. 대학과 대학생을 배경으로 대체로 출연진들의 연령이 높지 않다 보니, 그들의 신박한 언어와 사고방식 패션 등이 눈길을 끈다. 연출은 이러한 포인트를 곳곳에 배치해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한다. 더불어 아이돌 출신들인 두 남자 주인공을 한 영상에서 길게 볼 수 있는 행운도 거머쥘 수 있다. 갓 만화를 찢고 3차원 세계에 진입한 것 같은 ‘만찢남’ 인물들의 비주얼 또한 이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영화의 드라마 버전은 2022년 제1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인기스타상(박서함 박재찬), 2022 올해의 브랜드 대상, 2022 APAN STAR AWARDS 남자 배우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2023년 포브스코리아 2023 소비자 선정 최고의 브랜드 대상 드라마 연기자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저력을 과시했다. 영화는 2022년 제58회 대종상 영화제 뉴웨이브상 남우부문 수상(박재찬), 후보로는 2022년 제58회 대종상 영화제 대종이 주목한 시선상에 올랐다.

 

이 영화는 엄청난 자본을 쏟아내 웅장하고 화려한 영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섬세한 감성 터치와 대사, 대체적으로 튀는 곳 없는 매끄러운 극 전개, 간간이 배치한 센스 넘치는 ‘착붙’ CG, TMI로 잘라내고 싶은 컷이 보이지 않는 담백한 서사 또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아이돌급 외모와 Z세대라는 차세대 인물들이지만, 자신의 진심에 성실한 재영과 그런 감정에 혼돈스러워하는 상우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진정성, 이런 인물들을 인정하고 성심으로 배려하는 후배 류지혜 캐릭터 등이 관객에게 ‘본인의 사랑에 대하는 자세’를 전한다.

 

특히 장재영 여사친 최유나의 대사 중 “연애하면 찌질해지고 구차해지고 이게 정상 아니냐”,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절대 쿨해질 수 없거든”, “사람이 원래 안 하던 짓을 하면 특별한 거잖아” 등이 그러하다.

 

어쩌면 두 주인공의 이러한 서사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라는 공간적 안정성과 연령적 포용성, 기회적 무한성이 가미돼 충동적이고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풀어 말하자면 어릴 때 잠깐의 치기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나, 이들의 사랑이 치기이면 나이가 들어 20대 중후반부터의 모든 사랑과 감정은 어른스럽고 진중한가 내지는 계산적인가. 그것은 진정한 사랑일까 혹은 가면 속의 거래일까.

 

 

*B로맨스: 두 남 주인공들의(Boys) 특별한 감정을 담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