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채탄부(採炭夫) 홍성현 씨

 

[와이뉴스] 태백에서 나고 자랐다. 학업을 마치고 잠시 타향살이도 했었으나 곧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입사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거기에서 그는 30년을 근무했다. 탄광 일은 쉽지 않았다. 갱내의 높은 온도와 습도, 1km에 가까운 높이 차로 매일 겪는 기압 변화, 일주일에 100여 차례 시행되는 발파작업, 가시거리 1-2미터의 환경에서 매일 수십 킬로그램의 장비를 들고 나르는 작업, 언제나 땀에 젖는 작업복까지. 이러한 힘든 와중에서도 그의 보람은 오직 가족이었다. 자신이 힘들게 일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운다는 생각이 삼십 년 세월 그를 버티게 했다. 


2021년 12월 정부의 제6차 석탄산업장기계획 공고 후 홍성현 씨는 자신이 일하는 곳이 언제 문을 닫을지 불안에 시달린다. 앞선 25일 오후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에서 채탄부(採炭夫) 홍성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먼저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린다. 어떻게 탄광일을 하게 되셨는지 등.
- 고향이 태백으로, 태백에서 초중고교를 마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간 객지생활을 하다 부모님 계시는 고향으로 와서 지인의 소개로 취업을 하게 됐다. 군 제대하고 22살 때인 1993년 입사해 장성광업소에서만 30년째 일을 하고 있다. 1970-'80년대 산업전사라고 칭해졌을 때는 (지금보다) 생산량도 많았었고, 일반 다른 기업들보다 월급도 많았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이들 (탄광으로) 오셨었고 그때 오셔서 지금까지 계시는 분들도 있다.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지만, 광업소 자체 내에서 훈련소를 두 곳 운영했었다. 갱내에서 해야 할 일을 한 달 정도 갱 외부에서 익혀 현장에 투입됐었다. 예전 파독 광부들의 사전 교육장이기도 했다. 

 


■ 탄광업 현장의 실상은 어떠한지. 작업 시간, 환경, 업무량, 위험도 등. 
- 오전 근무는 08시 10분경에 관리자분들이 나오셔서 그때그때마다 작업 배소에 배치해주면 작업 배치를 받는다.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는 케이지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인차를 타고 작업장까지 가게 돼 있다. 주로 무연탄을 캔다. 지하로 내려가 환복을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기도 한다. 그 후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8시 50분 정도다. 3시 40분까지 작업을 하고, 작업복이 땀에 모두 젖은 상태니까 갱 내부에서 환복 후 다시 인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작업은 그 성질에 따라 1명에서 4명이 하게 된다. 작업 현장은 여기 사무실이 해발고지 600미터대인데, 해수면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최대 900미터 내려간다. 작업 현장에서는 안전모에 부착된 조명 하나만 있고 나머지 등은 전혀 없다. 가시 거리가 1-2미터 정도이고 심하면 앞이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루 20여 번 정도의 발파 작업을 하고, 소음이 심하며 지하수가 많아 머리 위로 물이 흐른다. 암반 뚫고 들어가 작업하다 보니 머리 위나 발 밑으로 항상 물이 있다고 봐야 한다. 32-33도씨 정도의 온도이고 습도가 높으며, 소음이 심해 난청을 앓는 분들도 많다. 탄광일을 하면서 기계 소리가 크니 소음성 난청을 얻게 된 것이다. 


철 구조물 하나가 60kg 정도 되는 장비를 혼자 든다. (아치형)철 구조물 세울 때 한 세트에 3개씩 들어가는데 하루에 두 세트를 세운다고 하면 6개 정도 옮긴다. 다른 직종도 그렇지만 광산 일이 굉장히 힘든 직업이다. 체력적인 소모가 엄청나다. 


높이가 다르다 보니 기압 차이가 나서, (작업자) 본인은 느끼지 못하지만 피로도가 빨리 오는 편이다. 

 


■ 현재 전국의 남아았는 탄광업소와 광부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 대한석탄공사 산하 3개 광업소와 민간업체인 경동탄광 1곳 총 네 곳이 있다. 대한석탄공사에 670명 정도가 근무한다. 최장 60세에 도래한 분들이 다수다. 

 


■ 사고 위험성은 없는지.
- 2016년도 공기업 구조조정 들어가고 난 후 인원 충원이라든가 안전장비 등을 (확충)할 수가 없다. 2015년경 신규채용이 마지막이었다. 사람을 채용하려면 나라에서 승인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일할) 사람은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 더 들어오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래도 위험한 데에 많이 노출이 돼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을 많이 강조를 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인원을 충족을 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역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업무량은 똑같다. 기존에 두 명이 하던 작업을 이제는 혼자 하는 격이다.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20여 차례 이러한 부분에 관한 의견을 전달했으나 요구가 전혀 관철되지 않았다. 

 


■ 탄광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 때와 보람될 때는. 아울러 작업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없으셨는지.
- 순간순간마다 힘들다. 힘이 안 들다고 할 수는 없다. 전에는 사람이 많으니 서로 도와주고 풀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체력으로 힘드니까 서로 도와주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이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는데 마쳐야 하는 일은 마저 해야 하니까 힘든 상황이다. 


워낙 힘든 일을 많이 하시다 보니까 어깨, 무릎, 허리 등 관절이 전부 마모됐다고 보면 된다. 팔을 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하는 분들도 계신다. 작업 자체가 어깨(힘)를 많이 쓰다 보니까. 


결혼해서 애들 키우고 한 것이 보람이다. 딴 거 없다. 


매 순간순간 위험하다. 위험물 다루고 폭약도 계속 다루고 하다 보니까. 긴장을 늦추게 되면 (위험하다). 폭약을 터트리고 탄을 캐고, 폭약을 터트려야지만 작업을 할 상황이다 보니. 폭약은 그날 그날 상황마다 다른데 보통 하루에 20번 발파한다. 발파 시 폭약은 안전교육을 이수하고 화약물 취급자격을 취득한 전문가가 다룬다. 탄을 캔다는 것은 위에 있는 것을 터트려서 내려야 하니까 폭약을 써야 하니 폭약 쓰는 일이 많다. 

 


■ 2021.12. 정부의 제6차 석탄산업장기계획 공고 후 대한석탄공사 노조는 입갱 파업을 최근 결의했는데, 관련 입장은. 
- 공기업이다 보니까 아이엠에프 터졌을 때나 그럴 때마다 제일 손해 보는 사람들이 공기업이다. 정부 투자기관이다 보니, 정부에서 투자라든지 이런 부분이 소홀해질 수 있고.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이 아무것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바깥으로 내몰리는 상황밖에 안 되다 보니 입갱 투쟁도 강력하게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우리의 뜻을 표명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은) 일정량을 일정기간 캐면 그 이후로는 생산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 대책은 없는 것이다. 노조는 3년으로 그 기한을 보고 있다. 


발표 했을 때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 방안이라든가 이런 것이 전혀 없이 일방적 통보밖에 없었다. 요구사안도 관철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기존 주던 것 자체도 줄이는 상황이다. 더 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전업지원금이라 하는 것을 42개월치를 주고 있었는데 한 달, 석 달 차감하고 지급하고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이제는 더 많이 삭감하고 지급하겠다고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 장성광업소가 태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하다고 보시는지.
-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여기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 가족들(까지). 태백시에서 큰 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 대규모 공장이라든가 하는 것이 없고 작은 농공단지 정도만 있기 때문에 영향이 크다고 본다. 전보다 수가 줄었음에도. 

 


■ 채광 산업이 융성할 때의 태백시 모습은 어떠했는지.
- 그 때는 우스갯소리로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소리가 나왔다. 그 시초가 여기다.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런 그림을 본 적도 있다. 경기가 무척 좋았었다. 여기서 결혼해 자식들 다 키우시고 그랬다. 옛날 어르신들은 '그 때 경기 좋았지' 하는 분들 계신다. 

 


■ 이 일을 시작하신 걸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지.
- 후회할 때도 있다. 왜 이 일을 했을까 하는.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까. 인간 대접 못 받는 생각 드니까. 중간중간 힘들 때는 다른 데 갔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든다. 100%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후회보다는 지금까지 30년 근속하면서 아이들 키우고 하는 게 가장 큰 보람이고, 후회는 잠깐인 것 같다. 몸담고 있는 직장이기 때문에 후회보다는 잘했다고 생각해야 일도 덜 힘든 것 같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 못하지만 동료들끼리 모여서 회포도 풀고 그러니까 괜찮은 것 같다. 

 


■ 먼 후일 폐광이 된다면, 그 후의 계획은. 
- 아직까지는 특별하게 계획은 세워놓은 것은 없다. 아직까지 놀고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최선이라면, 문을 닫으면서 대체산업이나 연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한다. 정부 발표대로 간다고 했을 때 그동안 다른 산업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이직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나이 드신 분들도 계시지만 젊은 사람들도 있으니까. 가장 기초적인 생존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 이 외 더 전하고 싶으신 말씀. 
- 사람들이 '막장'이라고 쉽게 얘기하고 갈 데 없으면 '막장 간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막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목숨을 담보로 해서 일을 하고 있다. 워낙 작업 조건이 좋지 않다 보니 굉장히 힘들다. 그런 부분에 더해서 정부의 '일방적 통보'도 힘든 상황이다. 


30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까지 마치고 안전하게 작업하고 정년을 채우고 나가는 게 직장인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일은 힘들지만 오래 가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요구안을 100%는 아니더라도 수용해줬으면 한다. 오래 갔으면 좋겠다. 조금 더 안전하고 (그런 작업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아까 이 조명 하나만 있다고 했는데, 이 불 하나가 어떨 때는 나갈 때가 있다. 그러면 누가 데리러 올 때까지 깜깜한 암흑 속에 혼자 고립돼 있어야 한다. 바닥에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모르니 더듬더듬 해서 나가기도 웬만해선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그동안 버텨왔다. 정부가 발표할 때마다 불안하다. 심적으로 편안하게 근무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