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후원하기

[동행취재] 오산농아인협회 2020 즐거운 알밤줍기

URL복사

참가자 모두 솔선수범 행복한 선물 같은 하루
이원창 황제오리본점 대표 “봉사는 행복한 일 계속 이어갈 것”

 

“이 기자님 21일 시간 되셔?”

이원창 대표가 전화로 일정을 물은 건 행사 개최 보름 정도 전이었다. 2019년에 이어 밤줍기 행사를 개최하려는 데 동행 취재가 가능하냐는 물음이었다. 이 대표가 농아인협회원들과 밤줍기 체험을 시행한 건 올해로 꼭 3년째다.

 

 

출발은 오산종합운동장에서 했다. 오전 09시 30분경 대부분의 참가자가 모였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지역과 상생하는 댄서들이 만든 예비사회적 기업 (주)소나컴퍼니 회원들도 다수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버스 탑승 전 참석자 명단 작성과 체열 체크, 손소독제와 분사형 발소독제 등의 코로나 대응 방침을 철저히 지켰다. 모두가 마스크를 콧등까지 착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원창 대표는 올해 초부터 닥친 코로나19로 이번 행사 개최에 많은 고심이 있었다고 한다. 농아인협회 측에서도 ‘이번에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하며 내심은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고 전한다. 그러다 이 대표와 부인 효란 김은자 작가는 용단을 내렸고 행사는 어김없이 열렸다.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이원창 대표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십수 년 전 다문화 관련 고객의 단체 식사를 준비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의 대화 가운데 “쌀이 없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됐고 이 대표는 그 즉시로 “그러면 제가 쌀을 좀 드릴까요”라고 했다. 그들은 장난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이 대표는 진담이었고 그렇게 그의 봉사활동은 시작됐다. 쌀을 주고 식사를 대접하고 나중엔 근방 어르신들을 모셔 진지를 대접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농아인협회에 애착을 갖는 건, 김미옥 지부장(경기농아인협회 오산지부)과 협회원들 간의 투명성과 진심을 믿기 때문이라고. “이런 단체가 없다”고 역설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농아인협회 행사에 동행하면서 줄곧 느끼는 바는 이곳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것이다. 누구도 고성을 지르거나 서두름이 없이 느긋하고 차분하게 행동했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 이원창 대표와 그의 죽마고우 임원길 씨의 고향이다.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그곳에서 그 둘은 어릴 적부터 어울려 지냈다. 임원길 씨는 말수가 적은 편인데, 올해는 그래도 두 번째 본 차여서인지 이원창 대표와 코흘리개 시절 쳤던 짓궂은 장난까지 알려주기도 했다. 얼핏 무뚝뚝해 보이지만, 방문객 도착 전 먼저 산에 올라 밤을 털어놓기도 하고 어느 곳에 열매가 많은지 눈여겨 봐두고, 줍는 이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항상 맨 뒤에서 진행을 도왔다. 간혹 그가 두 손 가득 밤을 주울 때도 있었는데 그것은 곧바로 손님의 가방으로 향했다. 열심히 주워서 손님에게 주는 것이었다.

 

 

올해는 3살 5살 등 최연소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협회원의 자제들이라는데 고사리 같은 손과 자그마한 발로 밤을 줍고 산을 올랐다. 무엇보다 어른들과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을 했고 울거나 투정 부리는 일도 일절 없었다. 여느 어른보다 어쩌면 더 무던하게 밤줍기 체험을 마쳤다.

 

 

무사한 행사 개최에는 오산농아인협회 임직원과 수어통역센터 직원들의 공이 컸다. 그들은 나선다고 나서지도 않고, 빠진다고 빠지지도 않으며 시종일관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해나갔다. 처음 도착해 주운 밤을 담을 봉투와 장갑을 나눠주는 일부터 점심시간 식사 준비, 차린 것을 치우는 일, 도착해 짐 정리까지 척척 해냈다. 여느 사람이라면 십여 분하면 지겨울 일을 그들은 한숨 한 번 쉬지 않고 반나절 넘도록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일부 참가자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으로 대화하는 수화는, 배재만 오산시 수화통역센터 실장에 의하면 “아이들의 수화는 고 조그만 손으로 움직이는 것이 무척 아름답고 예쁘다”. 실제로 이날 참가한 다섯 살배기 어린이는 협회원의 수화를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이해한 듯 작게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김명철 오산시의원 부부도 참여했다. 김 의원은 어찌 매해 오시느냐는 물음에 “그냥 뭐, 가까우니까요 허허”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오산에서 여기(공주) 금방인데요 뭐” 한다. 금방은, 고속도로로 1시간가량이다. 그것도 본인의 차량을 끌고 오면서. 이원창 대표는 “카니발 ‘똥차’”라고 농담을 건넸지만 김 의원의 차는 거의 도착과 동시에 협회원들의 짐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 몇 회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짐을 김 의원 차에 실어놓고는 “의원님, 00짐 차에 있어요?”하고 물을 정도였다. 그러면 김 의원은 “네, 거기 어디 있어요”라고 답한다. 이원창 대표는 “김명철 의원은 의회 밖 나오면 그냥 동네사람인지 의원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어우러지는 사람이라고.

 

 

첫 번째 행사인 2018년에는 부슬부슬 비가 왔다고 한다. 비 내리는 숲에서 밤을 줍는 광경이란 생각만으로도 이국적이다. 올해는 맑았다. 참가자들 대부분 나눠준 봉투와 준비해온 듯 보이는 가방에 일정 정도 밤을 담았다. 누구도 가방이 터지도록 담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저 적당히 그들이 두어 번 먹을 만큼의 양만을 주운 듯 보였다. 그래도 내심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근방 산 대부분이 밤나무이고 그 옆으로는 물이 흘렀다. 물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끌어올렸다. 논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덩이덩이 늙은 호박도 더러 보였다. 밭에는 수확을 코앞에 둔 콩도 보였다.

 

 

식사는 이원창 대표 내외가 준비한 김밥과 떡, 음료 등으로 이뤄졌다. 앞서도 밝혔듯 누구나 솔선수범해 자리를 펴고 정리했으며 짐을 옮겼다. 그 과정이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이뤄져 누가 보면 맡은 배역이 있는 듯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전연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야말로 척하면 척,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재깍재깍 해치웠다.

 

 

행사장에는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 상을 받게 된 이원창 대표를 촬영하러 온 촬영팀도 보였다. 이 대표는 초등학생이 발표하는 차렷 자세로 준비된 원고를 읽었고 수차 엔지가 났다. 돌아오는 길에 “아, 나 방송은 못하겠어. 방송하는 사람들 존경스러워”하며 진땀을 뺏다는 후일담도 늘어놓았다.

 

 

충남 공주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밤생산지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안은 당도가 뛰어나고 저장성이 좋아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며 신품종개발과 육종기술을 보급해 병해충에 강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한다.

 

 

이번 밤줍기 행사는 참가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했다고 했다. 신청은 회원들에게 단체로 알려 참가자를 받았다. 통역사에 의하면 오산 관내 농아인은 700여 명, 이 중 협회 가입 회원은 100여 명이라고 한다. 이원창 대표는 본인과 임원길 씨의 여건이 지속하는 한 행사는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지난해에 이어 말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자비를 들여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데리고 해마다 향하는 이원창 대표. 그가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실상 밤(栗)이 아닌, 쉽사리 여행 한 번 가기 힘들 회원들에게 선사하는 행복한 선물 같은 하루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