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레기와 언론개혁과 900억 원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이른바 ‘기레기’란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용어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이는 ‘기자+기러기’를 뜻한다. 즉, ‘기러기처럼 모여 다니면서 제대로 된 기사는 배출해내지 못하는 기자들’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설명이다.

 

실상 일선 기자들이나 언론사 사주가 권력에 편승하거나 출입하는 기관의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거나 심지어 종용하고 암묵적 압박을 가하는 사례가 암암리에 이뤄져 온 것도 사실일 것이다. 또 기자(記者)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능력이 아예 부족한 기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엄연히는 이들도 기자가 맞다. 왜냐하면 ‘신문사는 기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기실 자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영업을 잘하거나 기사를 잘 쓰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해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또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끌며 실상 알맹이는 텅 빈 기사들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한국사회에서 기자들은 적잖이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기인해 언론개혁을 주창하며 그간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5일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다가오는 추석 연휴 전 확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개정안에는 고의 허위 보도, 중과실 허위 보도, 허위 보도 인용·매개 등으로 분류하여 차등 손해액을 정해 배상토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유튜브 등에 대한 규율 방식도 명시했다. 정보통신망법에 유튜브 등에 대해 언론중재법을 준용하도록 하는 규정과 유튜브 등을 언론으로 의제해 언론중재법으로 포섭하고 그 범위를 시행령으로 특정하는 방안이 설시됐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에서 허위조작보도로 900억 원이 넘는 징벌적배상 선고가 있었다. 이 정도 돼야 징벌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24년 2월에는 쿠팡이 기피인물 채용을 막기 위해 1만 6천여 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가운데 100여 명이 특정 언론사의 기자와 PD들이라고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경향신문, 국민일보 등 31개 언론사 기자들이 명단에 포함됐다고 한다.

 

만약 위의 법안 검토안처럼 배액 손해배상제가 시행되고 한 기자가 2024년 기준 41조 2901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쿠팡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 출고했다고 해보자. 이에 대기업 쿠팡 측이 손배소송을 제기하고 언론사가 패소할 경우 배액 배상을 해야 한다면, 이를 감내하고 언론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 4단체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표명을 했다. 이에 앞선 8월 29일에는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촬영인연합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영상편집기자협회, 한국편집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의 단체가 연합 성명서를 통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 및 시민 피해 구제 확대에 공감한다”면서 “언론의 권력 감시 위축은 시민의 피해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입법 취지대로 순기능만 할지는 의문이며 ‘악의적 보도’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규정이 없으면 향후 어떤 권력이든 자신들에게 불편한 비판 보도를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질적으로 기자들은 의도치 않게 각종 송사에 휘말린다. 단체장의 정책 시행에 반하는 기사를 작성하거나 고위 관료 및 정치인의 과거 행상이나 치부를 들춰내는 기사는 특히나 소송에 취약하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걸면 걸리는” 소송에서 기자들은 결코 자유롭지 아니하다. 이럴 때 동료 기자들이 합심해서 협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율적으로 과반수는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오히려 소송을 건 측에 가서 협조하여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취하고 피소된 기자를 헐뜯는 ‘기자’들도 있다. 이것도 현실이다.

 

건전한 비판에도 무척 예민한 편이며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그 약(藥)을 겸허히 받아 자정하는 권력자는 흔치 않다. 즉, 기자가 피소되면 명예가 훼손되는 건 기사의 대상과 더불어 해당 기자일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는 것이다. 경험상 그렇다. 괜한 ‘입바른 소리’를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송사에까지 휘말렸으니 잘못은 기자에게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한 기자는 업무 차 방문한 시청사에서 “시장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같은 기자에게 ‘욕을 먹은 적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또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해 사무실에 첫 출근하는 날 목격한 모습이 칼을 들고 찾아온 청년들 무리였고 지역 내 이권 다툼을 다룬 기사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술회도 있다. 전화로 “어떻게 그런 기사를 낼 수 있느냐”는 항의와 사무실을 방문하여 몇 시간씩 항변하는 사례 정도는 애교다. 실제 소송이 시작되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송사에 할애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진실의 순결한 속살’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앞서 언급했던 ‘능력이 있는 기자든 없는 기자든’ 마찬가지다. 본인의 실력 한도 내에서 그릇된 점을 개선하고자 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려 시민의 알 권리를 증진시키고자 힘쓴다. 대체로 많은 기자가 그러하리라고 믿는다. 이것 또한 경험칙이다. 권력과 자본의 단맛에 취하거나 초심이 변질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은 권위주의 정권의 실상을 드러내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기자들은 일견 ‘독립운동’ 내지 ‘민주화 투사’로 비춰지기도 하였으며 억압받는 시민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해외의 언론자유 지수는 국제 비정부기구인 국경없는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가 매년 전 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언론자유 환경을 평가하여 발표하는 순위다. 2024년 기준 한국은 62위를 기록하며 1년 만에 15계단 하락해 ‘문제 있음’ 그룹에 포함되었고 2023년에는 47위였다. 2025년에는 180개 국가 중 61위라고 한다. 2년 연속 ‘문제 있음’이다. 이는 몇몇 언론사들이 기소 위협을 받았고 기업과의 이해관계 등으로 언론의 감시자 역할이 저해되며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역대 최저 순위로는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72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고도 전한다.

 

‘기자(記者)’라는 타이틀은 매력적이다. 다만 그 직책을 보존하기 위해 지속적인 자정작용과 공익을 위한 기여, 시민의 알 권리 충족 및 공정한 언로의 역할, 객관성과 정확성 등의 제 역할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언론개혁의 칼을 꺼내든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5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한 개정안이 충분한 숙고를 거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이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도 진중하게 논의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대한민국헌법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