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09 두물머리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대한민국 유기농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정확한 행정구역명은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97번지 일대다. 이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이는 두물머리의 어원을 이룬다. 2009년 이곳에서 일어난 ‘강제이주’의 궤적을 찾아가 본다. - 편집자 주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97번지 일대 두물머리. 이곳은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지정돼 이곳에서 유기농을 경작하던 11개 농가는 강제이주를 당했다.

◈ 사건의 발단 ‥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한국형 녹색 뉴딜 사업으로 일컬어진다. 녹색 뉴딜 사업이란 저탄소 친환경 자원절약 등을 뜻하는 ‘녹색’ 성장전략에 일자리 창출을 뜻하는 ‘뉴딜’ 정책을 합한 말이다.

2009년 1월 MB정부는 4대강 살리기, 녹색 교통망 구축 등 36개 녹색뉴딜사업에 2012년까지 총 50조원을 투입해 96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핵심으로 추진됐다. 두물머리는 2009년 5월 4대강 사업 한강 제1공구로 포함됐다. 이곳은 1973년 팔당댐 완공 후부터 정부가 임대하는 국유지로 당시 총 11농가가 유기농 경작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이곳이 고향인 농민도 있었고 농사가 좋아 귀농한 농가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농민들은 3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투쟁을 벌인다. 그러다 2011년 7개 농가가, 2012년 4개 농가가 이곳을 떠났다. 두물머리의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생태학습장 조성 조건을 내걸고 정부의 토지구매자금융자 제안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2012년 마지막까지 남았던 4농가가 두물머리를 떠나면서 두물지구는 산책로, 갈대습지, 생태학습장 등으로 조성됐다.

△ 두물지구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경. 1973년 팔당댐 완공 이후 정부는 이 일대 땅을 국유지로 농민에게 임대하고 상수원보호구역, 그린벨트 지역으로 지정했다.

◈ “이곳에서 농사짓게 해달라”
두물머리 일대는 팔당댐 준공 이후 상수원 보호구역과 그린벨트 지역으로 지정돼 일체의 개발행위가 금지됐다. 다소 엄격한 규제로 농민들은 주택의 증개축을 비롯한 여러 단속의 대상이 됐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농사였다. 그렇게 두물머리 농민들은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그곳을 한국 유기농업의 발상지로 탄생시켰다.

강제적으로 이주를 해야 했던 처지에 놓인 반대 농민들은 중장비, 철거용역 등과의 충돌이 있었고 업무·공무집행 방해 명목으로 경찰서에 출두하거나 법원 재판장에 서기도 했다. 재판비용과 벌금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5개 농가에 고스란히 돌아왔다.

11개 농가는 처음에는 LH의 보상을 거부했었다. 정부는 국토개발사업에 따른 보상을 법원에 공탁하고는 계속 사업을 진행했다. 강제집행 철거가 진행되려 하니 점차 협의가 되면서 농민들은 보상을 받아왔다. 소송은 계속 진행됐다. LH가 공탁한 보상금액과 실제 농민의 피해액이 달라 행정소송을 통해 보상금이 일부 증액되기도 했었다.

경기도는 이주 시 농업발전기금 융자를 제안했고 이는 3년 거치 17년 균등분할 연리 1.5% 상환조건이었다. 3년 후 상환 기간이 도래하자 가족과 주변 등지로부터 자금을 융통해 원리금을 상환하던 농민들은 급기야 신용불량자 또는 파산에 이르게 됐다. 농민들은 이주 토지를 다시 경기도가 매입하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2015년 10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변경 조건을 내세웠다. 이로써 10년이 지나는 2021년부터 농민들은 기존 조건 대비 1.7배의 원리금 부담을 안게 됐다.

경기도의 토지구매자금 융자는 경기도가 자금을 조달하고 실질적으로 양평군이 집행했다. 양평군은 행정구역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농민을 도울 수 있겠냐며 양평 관내 이주로 농사 가능하다고 권고했다.

◈ 경기도·양평군 입장 ‥ 형평성·보상
경기도 농업정책과는 2032년까지 상환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융자를 받았으면 상환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정은 안타깝지만 융자를 이용한 시민이 그들만이 아니니까 상환액을 탕감하거나 기간을 또다시 연장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원금 융자금 상환 기일이 가까워질수록 탕감 관련 얘기가 나오니 난처하며 그들에게만 조건을 완화해주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이미 2015년 상환 기간 연장도 이례적인 사안이라는 것.

다른 이들도 똑같이 융자금을 받아서 사용하고 있는데 갚기 어렵다고 그들만 조건을 유예하기에는 법률상 근거가 없고 또 상환기간 연장을 더 진행하면 2040년이 넘어가고 그렇게 되면 융자 내용 자체도 아는 이가 없게 될 것이며 무한정 기간 연장은 불가하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들과의 형평성이 있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융자받은 금액은 적게는 2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이 넘는 규모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됐으며 구매한 농지는 농가별로 3천300-6천600㎡ 정도다. 아직 상환율은 무난하며 이자만 갚는 이들도 있다. 경기도 농업발전기금 2019년 예산은 625억 원이며 11농가의 총 융자금은 60억 원가량이다. 농업발전기금은 융자금으로 현재 900억원 이상이 순환되고 있다.

피해 농민이 아닌 다른 융자금 사용자는 ‘강제’로 융자를 받은 것은 아니고 자기 영농을 위해서 융자를 받은 것이지만, 농민들의 딱한 사정은 인간적으로 이해되나 몇 명만 계속 봐줄 수는 없다고 했다. 1천여 농업발전기금 이용자 모두 힘들다 하는데 누군 해주고 누군 안 해준다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평군 관계자는 이주 농가는 이미 LH에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은 양평군이 위탁받아 시행했으나 사업 진행을 맡았던 당시 관련 부서와 서류 등은 현재 뿔뿔이 흩어져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아울러 이 문제는 경기도와 더 가까운 사안이라고도 했다.

◈ 보상을 받았다는데..
두물머리 사업을 위탁받아 진행한 양평군은 해당 이주 농민들이 보상을 받았다는 것에 방점을 두는 듯한 인상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상 관련 설명을 하고자 한다.

두물머리 일대 16만 5천290㎡ 규모의 하천부지에서 친환경 유기농 경작을 하던 11개 농가가 경기도로부터 융자받은 농업발전기금은 총 60억 원가량이다. 이들은 적게는 2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이 넘는 액수를 대출받았다. 연 금리 1.5%. 첫 이주가 시작된 2009년 양수리 697번지 일대의 공시지가는 국토부에 따르면 단위면적(㎡)당 6천600원이다. LH에 의하면 보상은 피보상 측과 지자체 측에서 천거한 업체를 통한 감정평가로 이뤄진다. 개인정보 사유로 해당 농가의 보상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현재까지 주어진 정보로 추정은 가능하다. 두물지구인 양수리 697번지 일대 2009년 공시지가*11농가의 총경작면적+각 농가의 주택 등 시설물 감정평가 비용을 계산하면 대략의 보상비용을 추산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해당 농가의 각 시설물 상황은 알 수 없으므로 미지수로 두고 산술을 해본다면 공시지가*총경작 면적의 값이 2009년 당시 이들의 보상금이 될 수 있으나 경작 규모 등에 따라 또 농지가 아닌 토지의 삽입으로 보상액은 달리 책정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들의 융자금 규모를 살펴보자. 한 농민의 경우 융자받은 5억 3천만원으로 두물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3천755㎡의 농지를 구입해 연간 소득이 3천만 원 남짓이다. 이주 첫해부터 1.5%의 이자를 지급해야 했으므로 이 농민의 경우 연 795만원의 이자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 도출된다.

원금 상환 기간인 2021년부터는 원리금으로 계산해야 하니 5억 3천만 원을 10년 상환인 10으로 나누면 5천300만원이다. 여기에 이자 795만원을 더하면 이 농민이 10년 동안 매년 납입해야 하는 금액은 6천95만원이 된다. 나머지 농가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략의 추산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안은 애초에 두물지구가 임대 국유지였다는 점이다. 즉, 농민들은 국가가 3-5년 단위로 빌려주는 땅에서 소정의 임차료를 지불하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른 2010년 농가소득은 평균 3천212만 1천원이며 이 중 순소득은 2천304만 4천원,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18년 농가소득은 평균 4천206만 6천원, 순소득은 2천987만 3천원이다.

이러한 정황들로 살펴볼 때 해당 피해 농민들은 4대강 사업이 시행되기 전부터 경제적으로 윤택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현직 전문 농부에 의하면 새로운 농지를 개간해 그곳에서 연 매출 5-6천만 원가량의 혹은 그보다 적더라도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통상 10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또 수년간 싸우다 강제적으로 이주를 해 억대의 빚을 지고 허울 좋은 지주가 됐으니 이 또한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 해결법은 무엇인가 ‥ 안 되면 되게 하라
애초 4대강 사업은 국가 정책으로 경기도와 양평군보다는 국토부 환경부와 더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4대강 사업의 합리성을 논하는 것은 일단 제외하기로 한다. 피해 농가는 양평군에 거주한다. 해당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 경기도는 손을 맞잡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가 줄곧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양평군의회나 경기도의회 조례 제정을 통한 해결법 모색이라든지 만일 조례 제개정이 상위법에 어긋난다면 국회법 제개정을 통하는 루트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당 피해 농민들은 10년 가까운 시간 빚 독촉에 시달려 왔다. 이들은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자신들이 매입한 농지를 경기도에 되팔고 빚을 탕감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2019년 1월 기준 두물지구 공시지가는 1만 200원이다. 해당 농민들이 위에 언급한 경우처럼 이곳에서 가까운 곳의 농지를 구입했다면 총 융자금 60억원 나누기 공시지가를 하면 그들이 구입한 총면적을 산출할 수 있다. 58만 8천235㎡로 이 면적의 농지를 경기도나 양평군이 매입하고 이후 두 기관이 주체가 돼 토지 매입을 원하는 시민에게 되파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해당 농민들은 60-70대 고령자도 다수이며 근래 블루오션 작물이라 불리는 블랙사파이어 포도, 라디아, 체리 등의 품종을 수확한다 해도 그만큼의 판로가 확보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힘들다. 국가 정책에 의한 두 번째 ‘강제이주’까지 각오하고 있는 피해 농민에게 한 줄기 빛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음은 한 농민이 두물머리를 떠나며 남긴 심정이다. 취재원 보호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의거 실명은 게재하지 않는다.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시작할 때 유기농지를 지키자고 팔당댐 주변 농민들 수백 명이 모여서 결의했었죠.

4대강 사업에 맞서서 끝까지 싸워 유기농지를 지키자고.. 강을 사이에 두고 양평 두물머리 광주 남종면 남양주시 조안면 농민들 수백 명이 모여 결의했습니다. 지금 모인 모든 농민이 끝까지 함께 하자고..

2012년 8월 정부와 극적으로 합의할 때 남아있는 농민은 4가구였습니다. 싸움에 지쳐서 떠나버린 농민들의 빈자리를 천주교 신부님 환경 사회단체 생협 조합원들이 채우고 있었죠.

두물머리를 떠날 때 .. 우리끼리 많이 싸우고 논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협의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많아서였죠. 3년 4개월 싸우느라고 몸과 정신이 힘들고 가정도 어려운데 합의하지 말고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니 난감하더라고요.

그때 같이 싸우던 사람들과도 마음이 상했고 마을 어른들하고도 언쟁하다가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었지요. 그때 마을 어른들은 이명박 정부 편에서 두물머리 농민들을 공격하고 떼로 몰려와서 두물머리 농민들 때문에 지역발전이 안 된다고 하면서 욕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물머리 농사를 마무리하고 떠났습니다. 그때 두물머리를 떠나면서 들었던 생각은 전국 4대강 사업지구 중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곳이라고 언론에 나기도 했지만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명분은 실리를 이길 수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지역 상인들, 이장님들, 군청 면사무소 직원들이 한통속이 되어 두물머리 농민들을 공격했었죠.

내가 좋아하게 된 농사, 내가 바라던 유기농 농장을 다른 곳에 가서 만들어 보자라고 맘먹고 두물머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50이 넘어서까지 두물머리에 얽매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네요.

그나마 두물머리를 떠날 때 합의했던 생태학습장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다행이다 싶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더군요.

그렇게 2012년 말 두물머리에서 나왔습니다.



/ 이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