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유죄판결 뒤집어… 청와대 게시판 ‘처벌 요청’ 청원
성소수자인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장교 2명에게 2심 재판부가 1심 유죄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간부를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진행 중이고 시민단체와 녹색당, 정의당 등은 성명을 통해 관련 사안을 비판했다.
A대위는 직속상관인 B장교에게 2010년 함정에서 성폭행을 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 중절 수술을 위해 당시 함장이었던 C대령에게 이 사실을 밝히자 C대령도 A대위를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군인 강간치상 혐의가 인정돼 B장교와 C대령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0년과 8년형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앞선 8일 두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양팔을 강하게 눌렀다”는 A대위의 증언이 “저항하기 불가능한 정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사건이 친고죄 폐지 전에 일어났기에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는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해자 A대위의 여자친구라고 밝힌 게시자의 청원글이 올라와 있으며 20일 오후 현재 15만 6천946명이 참여하고 있다.
청원글에서 게시자는 “A중위는 현재 해군 대위이자 이 청원을 올리는 저의 여자친구”라며 “2010년 9월경 해군 중위가 직속상관에게 상습적 강간과 강제 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당시 함정에 포술장으로 근무 중이던 B소령(사건 시 직위명)은 사통관으로 근무 중이던 부하 A중위에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악질적인 추행과 강간을 함정 안팎을 가리지 않고 자행했다”며 “또한 A중위가 성소수자라는 점을 악용해 ‘남자 맛’을 알려준다는 빌미로 자신의 범죄행각을 합리화했다”고 했다.
또 “A중위가 근무 중이던 함정의 함장 C중령은 중절수술을 위한 휴가를 받기 위해 사건의 경위를 밝혔던 A중위가 수술을 하고 돌아오자 (중략)직위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술을 먹이고 위력을 사용해 강간을 하는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1차 가해자인 B중령 아내 D씨가 A중위에게 ‘가정 파괴’ 등의 이유로 민사 소송까지 진행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A중위와 검사 측, 국선 변호인의 노력 덕분에 1심에서 1차 가해자인 B소령은 징역 10년형, 2차 가해자인 C중령은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이에 수긍하지 못하고 항소심을 진행했고 2018년 11월 08일 2차 가해자인 C중령의 항소심 결과가 무죄로 선고됐다”고 했다.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앞선 19일 오후 고등군사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성범죄자에게 끊임없이 면죄부를 주는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군대 내 성폭력을 재판부가 철저하게 외면하고 방치했다”고 주창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2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군내에서 벌어지는 성폭행은 계급에 의한 위력이 추가로 작용하는 악질적인 범죄다. 군대가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군사법원에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주는 군사법원은 존재이유를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또 “특히 이번 사건은 부하직원이 여성이자 성소수자라는 점을 약점으로 잡아 행한 범죄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가 치민다”며 “대법원은 2심과는 달리 응당한 처벌을 내리길 촉구한다. 대법원의 판결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녹색당도 보도자료를 내고 성명을 통해 “‘피해자가 상급자에게 심리적 억압상태에 놓여 있었음은 인정하나 폭행·협박에는 해당할 수 없다’, ‘피해자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내심으로는 명백한 거부의사가 있었으나 외부적인 명시적 거부로 이어지지 않아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인지했다’는 등의 선고이유를 보자면 재판부라기보다 성범죄 공범에 가깝다”며 “판사의 삐뚤어지고 왜곡된 성관념이 그대로 드러나 ‘상호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것을 평생 가져본 적이 있을지 의심케 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여성이자 성소수자라는 것을 ‘약점’으로 삼고 직속 부하를 수차례 성폭행한 파렴치한 군인을 ‘무죄’로 풀어준 대한민국 군사법원의 끝을 알 수 없는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탄압에 숨통이 막힌다”며 “성폭력 사건을 일벌백계할 의지조차 없는 모습에 참혹함을 금할 수 없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그 분위기를 맞췄다’, ‘서로 사귀는 사이 아니냐’는 재판부의 언어도단을 보노라면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성폭행을 당하다 죽든지 아니면 살아서 가해자가 무죄로 당당히 걸어 나가는 모욕을 당하던지 두 선택지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비탄에 휩싸이게 된다”고 밝혔다.
/ 이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