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영화] 시아버지와 예비 며느리의 치명적 사랑?

인간 내면의 욕망을 현실화한 영화 ‘데미지 Damage’

소설(小說 novel)의 특성 가운데 진실성이라는 게 있다. 이는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과 얼핏 보면 상충하는 특성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작품 속 인물의 모습을 통해 삶의 진실성을 찾는다는 뜻을 함축한다.

 

프랑스의 거장 루이 말 감독의 1992년 영화 ‘데미지 Damage’는 시아버지와 예비 며느리의 치명적 사랑이라는 통속적 해석 말고도 인간 내면의 욕망을 현실화한 작품으로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의사 출신의 정치가로 보수당의 거물이 된,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 아내를 둔 사회적으로 완벽하다 할 수 있는 50대 중년 남성 ‘스티븐 플레밍(제러미 아이언스)’은 어느 날 파티에서 아들 ‘마틴(루퍼트 그레이브스)’의 연인 ‘안나 바튼(줄리엣 비노쉬)’을 만나게 된다. 그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둘이 묘한 감정을 느끼고 끌리게 되며 처음 가졌던 아들과 연인에의 죄책감을 미뤄두고 그 둘의 감정에 충실하게 되며 발각되고 아들은 죽고 남자 주인공 플레밍은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여자 주인공 안나가 그녀의 옛 연인 피터와 아이를 안고 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20년이 훌쩍 넘은 영화이니 디테일한 스포까지 겸했다고 욕하진 마시라. 아일랜드 출신 조세핀 하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후 개봉했을 당시 국내에서는 파문에 가까운 수준으로 논란을 일으키다가 2년간 수입 금지 조치를 당하고 루이 말 감독이 내한 기자회견 등을 가진 후에야 겨우 개봉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이 영화의 충격적인 스토리와 파급력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보고 혹시 이런 삼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막장 이야기라고 치부하실 독자가 혹여 계실지도 모른다. 또 혹여는 심리학적으로 풀이되는 누구나 살아오면서 겪었을 결핍에의 기억이 해서는 아니 될, 금기된 관계에서의 감정을 야기한다는 흔한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또는 안나의 어린 시절 불행했던, 그녀의 친오빠가 그녀의 연인인 피터와 사랑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동맥을 잘라 자결하는 등의 경험으로 말미암은 ‘비정상적 행위’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플레밍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라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젊음을 아들의 연인인 20대 안나에게서 찾으려고 했을 수도 있고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자아(ego)가 그 결핍을 채우려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해석이든 틀린 것은 없다. 무엇이 됐든 이 둘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은 틀림없다. 더군다나 아들의 사망까지, 이 둘의 관계로 주변인들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누리꾼들의 한줄평 또한 흥미롭다. ‘시아버지가 쓸데없이 섹시한 영화, 모든 시아버지가 부러워하는 영화, 우아한데 거칠다 사랑과 죽음, 퇴폐적인 영화로 보이나 인간의 욕망에 대한 영화인 거 같다, 어쩌면 인간은 내재된 유혹의 불씨가 있는 것이 아닐까’ 등의 평가는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성숙한 시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중 가장 마음을 끄는 평으로 소개를 갈무리할까 한다.

‘인생에는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 있다는 걸 알려준 영화. 그게 사랑이든 불륜이든 참을 수 없는 내면의 열정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