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무용단 레퍼토리 시즌 <률(律)>

대규모 스케일 한국판 스파르타쿠스

 

경기도무용단(예술감독 김충한)은 11월 26-27일 오후 8시 / 11월 28-29일 오후 4시 레퍼토리 시즌 작품 <률(律)>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무용이라는 장르에 스펙터클한 뮤지컬 요소를 접목시킨 댄스컬 <률(律)>은 ‘만적’이라는 고려시대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했고 한국판 스파르타쿠스를 이야기한다.

 

이번 경기도무용단의 창작공연 ‘률(律)’은 고려시대 부패한 기득권층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기울어져 가던 한반도 역사를 곧추세웠던 ‘만적의 난’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만적’은 고려가 건립되고 200여 년이 흐른 시점의 실존인물이다. 그의 생존 시기는 무신정권의 득세와 권력의 사유화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정점에 걸쳐 있다. 그는 간혹 한국판 스파르타쿠스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두 인물 모두 당대 최하층 계급이었던 노비신분으로 견고한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깨뜨리고자 했다는 공통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번 경기도무용단의 창작공연에서는 ‘만적’이 달성하지 못했던 이 땅의 강건한 자유와 해방 의지를 ‘률(律)’이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완성시킨다. 팔백여 년 전 장렬히 산화해 간 민중들의 숭고한 정신을 장엄하고 스펙타클한 움직임으로 되살린다.

 

레퍼토리 시즌 2020 <률(律)>의 총연출을 맡은 경기도무용단 김충한 예술감독은 “경기도무용단이 담아내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통해 한국무용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장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관립단체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대형 무대를 마련해 공연 스케일도 국내 최고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즐기다, 느끼다, 기억하다‘라는 올해 무용단 키워드를 새겼다. <률(律)>이라는 작품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경기도무용단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 기획의도

고려왕조의 재인식

많은 이방인이 한반도의 역사를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케 된다. 동아시아의 왜소한 변방국가로서 이어온 오천 년의 유구성 때문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굴곡진 흥망성쇠의 파란 속에서 여타의 제국들조차 감히 꿈꾸지 못할 만큼 강인하게 지켜온 생명력이다. 고대 천년을 자랑하는 신라를 비롯하여 오백 년을 웃도는 조선의 역사성은 우리의 자긍심이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우리는 이러한 신라와 조선의 특출한 찬란함으로 그동안 상당 부분 도외시해 온 나태함을 부정할 수 없으니 그것이 바로 고려의 발자취다. 정확히 456년 동안 고려왕조가 온몸으로 견뎌낸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거란·요·금·원으로 이어지는 외환(外患)의 시련을 극복하며 지켜온 우리네 삶의 의미는 어느 왕조보다도 더 빛나는 유산이라 할 것이다. 단순히 세월의 흐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써가 아니라 한민족의 기상과 가치를 도약시켜 온 주춧돌로서의 고려역사를 재인식함은 당장의 시급한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2020년, 새로운 시대의 요청

고려만큼 대내외적인 시련에 시달려 온 시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외형상으로는 요동치는 중원의 정세에 따른 결과이기는 했으되 내부적인 알력과 계급투쟁의 부침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을 가중시켰다. 건국 백여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부터 발흥된 문무(文武) 간의 첨예한 대립은 급기야 극심한 내부적 분열을 야기시켰으며 여기에 끊임없이 이어진 외침은 나라의 존립 근간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고려는 그 질곡의 세월을 의연히 버텨 내었다. 기적과도 같은 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2020년 경기도무용단이 레퍼토리 시즌 첫 공연의 주제로 주목하고자 하는 접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숱한 고행의 내부적 파고는 우리의 역사를 침식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굳건하고 단단하게 담금질하는 역할로 작용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위적인 제도와 단편적인 개혁만으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의지’로부터 비롯돼야 하며 이러한 역사적 당위성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2020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경기도무용단은 허황된 야욕으로 나라를 극심한 혼란으로 매몰시킨 권력층의 각성과 새로운 인간세상의 질서를 회복코자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민초들의 경건한 의지를 ‘만적’이라는 한 인물의 절규를 통하여 확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만적과 스파르타쿠스의 역사성

이번 경기도무용단의 창작공연 ‘률(律)’은 궁극적으로 고려시대 부패한 기득권층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기울어져가던 한반도 역사를 곧추세웠던 ‘만적의 난’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만적’은 고려가 건립되고 200여 년이 흐른 시점의 실존인물이다. 그의 생존 시기는 무신정권의 득세와 권력의 사유화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정점에 걸쳐 있다. 그는 간혹 한국판 스파르타쿠스라 불리우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두 인물 모두 당대 최하층 계급이었던 노비신분으로 견고한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깨뜨리고자 했다는 공통점으로부터 출발한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는 해외원정에 따른 국가의 팽창과 부의 축적을 이루면서 검소함과 근면함을 숭상했던 고유의 미덕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만적’이 살아낸 고려와 매우 유사한 타락상을 보인다. 이러한 역사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행보는 전혀 다른 양상의 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다. 스파르타쿠스가 검투사뿐만 아니라 농장과 광산의 노예까지 규합하여 5만에 이르는 군사의 위용으로 3년 동안 로마 전역을 휩쓴 반면 만적은 결단의 모의가 사전에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마는 것이다.

 

 

경기도무용단 ‘률(律)’의 창작적 의미

정중부의 난으로 시작된 1170년 이후 백여 년 동안 전국에는 무려 75건의 민란이 일어난다. 그 많은 민란 중에서도 유독 1198년 ‘만적의 난’이 역사적 주목을 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만적’이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이 단순히 노비해방에 머물지 않고 고려 전체의 천민신분을 타파하고자 하는 한반도 최초의 신분해방운동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도 허무한 거사의 결과로 일부 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아주 무모했던 단순한 사건’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이것이 후일 갑오개혁이라는 혁신을 이끌어 내는 동학사상의 모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만적의 난’은 결코 실패한 봉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가슴 속에 불꽃처럼 살아 일렁이는 미완의 혁명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이번 경기도무용단의 창작공연에서는 ‘만적’이 마저 채우지 못했던 이 땅의 강건한 자유와 해방의 혁명의지를 ‘률(律)’이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완성시켜보자 한다. 팔백여 년 전 장렬히 산화해 간 우리들 기층민중들의 숭고한 정신을 장엄하고 스펙타클한 움직임으로 되살려 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경험치 못한 경기도무용단의 미래적 전망에 대한 또 다른 이정표이자 존귀한 역사적 교훈을 21세기 세계 역사의 물줄기에 덧대는 장쾌한 작업이 될 것이다.

 

 

■ 시놉시스

▷ 프롤로그. 운명의 수레바퀴

희뿌연 운무 속에 수레를 이끄는 남루한 모습의 노인이 등장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발걸음과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져갈 즈음, 붉은 문장의 깃발을 내세운 휘(揮)의 군사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며 광폭한 살육이 자행된다. 아비규환의 혼란 속에 일가족이 밧줄에 목매인 채로 허공에 매달린다. 홀로 남은 어린아이만이 덩그러니 남아 처연한 걸음으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때, 사라졌던 노인이 다시 조심스레 등장하여 바닥에 내팽개쳐진 칼자루 하나를 수습한다. 방황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한 노인, 그의 손을 낚아채어 황급히 사라진다.

 

▷ 제1장. 여정의 불꽃

소박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민가(民家). 사람들의 허름한 복색을 통해 이곳이 천민집단의 근거지임이 암시되는 가운데 다양한 악기의 선율과 함께 다이나믹하고 격동적이 움직임(춤)이 시작된다. 그 가운데 늠름하게 성장한 률(律)의 모습이 돋보인다. 률을 떠받치고 행진하는 의식으로 분위기 절정으로 치달으며 률이 마침내 지도자로 추대된다. 이 광경을 근심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인을 뒤로하며 률은 의연하고도 비장한 길을 나선다.

 

▷ 제2장. 예견된 인연

음험하고 차가운 달빛 드리운 숲속.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 랑(琅)이 잰 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를 뒤쫓는 복면의 무리들, 랑을 볼모로 권력찬탈을 꿈꾸는 휘의 수하들이다. 쫓고 쫓기는 긴박감 끝에 랑은 마침내 붙잡히고 강압적으로 끌려가야 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률이 등장하여 자객들을 물리치고 랑을 구한다. 서로에게 이끌리듯 마주한 두 사람. 랑이 호감어린 감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징표 하나를 건넨다. 조만간 궁에서 있을 검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증과도 같은 것이다. 총총히 사라져가는 랑과 이를 아련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률.

 

▷ 제3장. 꺾여진 칼날

검술대회가 열리는 호화로운 궁이다. 왕이 대회의 시작을 알리며 무희와 장수들의 축하공연이 이루어진다. 그 와중에 무장한 휘가 등장하여 현란한 검무를 추며 좌중을 겁박하고 랑을 희롱하지만 왕은 불안감에 떨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이어지는 검술대결에서 률은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최종 우승자가 되고 포상을 받기 위해 왕의 앞에 나아간다. 그런데 그때, 왕의 뒤편에 걸린 문장을 보고 률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할 때 사납게 펄럭이던 휘장이다. 왕이 자신의 원수임을 직감한 률이 칼날을 드세워 왕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호위병들에게 저지당하고 궁은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이 혼란을 틈타 급기야 휘가 왕을 시해한다. 수세에 몰린 률이 퇴로를 찾아 도망을 치고 그 뒤를 랑이 황급히 뒤따른다. 막다른 절벽에 다다른 률은 군사의 활을 맞고 쓰러지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 제4장. 분노와 사랑

부상을 입은 채 떠밀려 내려오던 률을 랑이 구하고 극진히 보살핀다. 정신을 차린 률이 자신의 옆에 있는 랑을 발견하고 냉정히 밀어낸다. 랑이 몇 번이고 매달리며 애원해 보지만 률의 모습은 얼음장처럼 싸늘하다. 이 때, 어린 률을 구해주었던 노인이 등장하여 칼 한 자루를 건넨다. 예전 률의 가문이 살육 당하던 장소에서 수습했던 아버지의 칼이다. 노인으로부터 예전의 진실을 전해들은 률이 랑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허공을 향해 분노에 찬 포효를 한다.

 

▷ 제5장. 일어서는 대지의 깃발

여명이 깃들기 직전의 새벽, 사납게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 다양한 모습의 무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농민, 승려, 노비 둥둥 제각기의 결연한 표정으로 혁명의 의지를 불태우며 비장한 출정에 나선다. 열의 맨 앞에 선 률을 필두로 허공을 가르는 파열음과 함께 목숨을 건 비장한 싸움이 시작된다. 인진일퇴의 공방 속에 수많은 주검들 쌓여져 간다. 마침내 마주한 휘가 률의 칼날에 고꾸라지며 승운이 민중들의 편으로 완전히 기울어 갈 즈음, 예리한 화살 하나가 날아와 률의 가슴에 깊숙이 박힌다.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군사들의 모습을 의연하게 바라보며 무릎을 꺾고 천천히 몸을 누이는 률.

 

▷ 제6장. 낙화(落花), 그리고...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랑이 률을 애타게 찾고 있다.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 속에서 랑이 지쳐 쓰러진다. 그 때 노인이 다가와 선홍빛 선연한 칼자루 하나를 전한다. 노도와 같은 출정의 기세 드높이던 률의 검이다. 처연하게 절규하는 랑과 률의 주검 앞으로 사람들 모여들고, 점점 고조되는 북소리와 함께 승전의 함성소리 온 산하에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