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기_어때] [107] 여주시_명성황후 생가

 

[와이뉴스] 이 집은 본래 숙종(1661-1720)의 비였던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의 부친이자 명성황후의 6대 조부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묘지기용 작은집으로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졌다.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이 집에서 명성황후(본명: 민자영 또는 민아영 1851-1895)가 부친 민치록(閔致祿)과 모친 한창부부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나 8세까지 살았으며 197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됐다.

 

 

앞에 긴 일자형 행랑채가 있고 그 뒤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튼 ㅁ자형 배치를 이룬다. 안채의 몸채와 날개채에 각각 큰 저장 공간을 마련한 것에서 애초의 용도인 묘막의 특징을 볼 수 있다.

 

8세 때 부친이 타계하고 어머니와, 숙부 민승호가 있는 서울의 감고당(感古堂)에서 왕비 책봉(1866) 전까지 생활하며 학문과 예법을 익혔다.

 

 

감고당은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친정집이었으며 폐위되어 머물렀던 곳으로, 이후 여흥 민씨 가문의 중요한 건물로 관리되었다. 명성황후는 입궁 후에도 감고당을 친정과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했다.

 

명성황후는 1866년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의 역할에 의해 16세 때 고종의 왕비로 간택되었고, 고종의 황후로 개화기 국정에 참여했으나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으로 시해됐다.

 

 

1897년(광무 1) 명성(明成)이라는 시호가 부여됐고 고종의 황제 즉위와 대한제국 선포 직후 황후로 추존됐다. 그해 11월 청량리의 홍릉(洪陵)에 장례를 치렀다가 1919년 고종의 장례 때 경기도 남양주 금곡의 홍릉에 합장됐다.

 

이 집은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됐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췄으며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자료 참조: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주시, 여주문화원, 경기문화재단 등
※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