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흉기(刀) 든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최근 곳곳에서 일어난 흉기난동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로 인해 일어난 공포심은 나라 전체를 휩싸고 단순한 ‘유사 상황’에도 혼비백산 도피하는 ‘소동’이 일어나며 시민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언론에 가장 처음 보도된 ‘묻지마 살인’은 1982년 우범곤 순경 총기 난사 사건으로 전해지는데, 당시 경남 의령군의 순경 우 씨는 동거녀와의 불화로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와 수류탄을 꺼내와 마을 주민 62명을 살해하고 30명이 총상을 입었다고 알려졌다.

 

근래에 흉기난동의 ‘포문’은 앞선 7월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골목에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한 명을 살해하고 다른 남성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33살 조선’이 범한 사건이라고 전해진다. 피의자 조선은 경찰 조사에서 “오래전부터 살인 욕구가 있었으며 내가 불행하니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8월 3일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모 씨는 경기 성남 분당구 서현역 한 쇼핑몰 옆 인도로 돌진해 시민들을 들이받고 건물 1층 로비를 돌아다니며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에 의해 파악된 피해자는 14명으로 차량에 치인 시민 5명, 흉기에 찔린 시민이 9명이라고 알려졌다. 피의자 최모 씨가 밝힌 범행 이유는 “사람 죽이는 방법으로 관심을 끌고 싶었다”라고 한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자 중 정신병력이 있는 경우는 전체 절반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정신병력이 없는 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또 이러한 ‘묻지마 범죄’는 선진국형 범죄로,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 고립된 개인의 열등감과 복수심이 계기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이 글에서는 ‘다른 사람만 행복한 것을 보기 싫어 (그에 따른 소외감으로) 칼부림을 한 경우’와, 이에 따른 ‘유사 칼부림 시도(미수)’의 오점을 다뤄 보고자 한다.

 

먼저, 전자의 경우라면, 대한민국의 행복순위는 OECD 38개국 중 35위로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매년 OECD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 순위에 따른 것이다. 또 유엔 산하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137개국 중 57위, 점수로는 10점 만점에 5.951점이라고 한다. 즉 백점환산 기준 60점도 안 된다는 것.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그에 눈에 비치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그리 낮지 않다는 말이다. 영어 속담 ‘찻잔 속의 태풍 a Storm in a Teacup’을 생각해보면, 외부에서는 매우 작은 사건으로 비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큰일로 다가오는 사안들이 있을 수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잠시라도 ‘여유’를 부렸다간 자칫 도태되기 십상이다. 수면 위로 평화로워 보이는 백조가 실상 물속에서는 필사적으로 물갈퀴질을 하고 있는 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종합해 보면, 피의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불특정 다수’를 공격했다는 것인데, 이는 여러 면에서 그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습격을 당한 이들이 행복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앞서 제시했고, 만약 그들이 피의자의 눈에 비친 것처럼 ‘행복했을 경우’라 하더라도, 공격을 하지 않는 편이 그들의 평범한 일상생활 영위를 가능하게 했을 터이고, 이로써 원활한 직장생활(혹은 사업)에 이은 세금납부, 이로 인해 (대체로 사회생활에 부적응한) 피의자는 사회기반시설의 수혜라는 간접적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반대로, 무차별 공격을 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비롯한 일반 선량한 시민들은 직접적 범죄자는 물론 사회 부적응자들에게까지 ‘잠재적 범죄 용의자’라는 인식이 덧씌워졌을 수도 있다. 범죄자 본인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 당연해 논외로 한다.

 

또 하나는, 유사 ‘칼부림 범죄 시도(미수)’다. 최근 연이은 ‘묻지마 흉기 난동’ 이슈로 사소한 분노에도 칼(刀)을 들고 와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대체로 연로자이거나 여성층이라고 전해지는데, 이야말로 득은 전혀 없는 실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옛말에도 ‘물지 않을 것이면 이빨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들은 ‘물 의도(용기)도 없으면서 이만 드러낸 격’이 되겠다. 법적 책임은 책임대로 지고, 본인의 이미지 실추는 물론, 내면의 자괴감만 더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력구제(자구행위)를 금하는 성문법주의 국가다. 일반 사인(私人)은 국가 공권력을 통해(서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확보 보호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 인정 범위 또한 그리 넓게 해석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한다. 하물며 본인의 ‘원한’과 ‘분노’를 해결하기 위한 위와 같은 ‘흉기 난동’은 곧바로 경찰에 의한 제재와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경우라 할지라도 진실로 본인이 억울하거나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하면 할수록 당장의 분노를 삭이지 못해 ‘칼을 들기’보다는 그야말로 정치(精緻)하게 녹취 사진 cctv 등을 통한 증거 수집 및 사건분석 후 사법기관을 찾는 편이 근본적 사건 해결에 용이할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당장 칼부터 집어들면, 이는 결국 본인도 파행이요,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또한 결코 긍정 인상을 줄 수 없음이다. 즉, 천에 하나 본인이 사과를 받아야 할 상황이더라도 오히려 법적 처벌만 누적될 수도 있음을 논하는 것이다.

 

연이은 칼부림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 의해 자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잠재적 두려움이 깔린 아노미(anomie) 상태다. 재차 언급하는 바이나, 본인의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무작정 칼을 집어 든다고 해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