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버스는 사람과 사회 잇는 튼튼한 다리

수원여객 14년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 이대섭 씨

새벽. 사위는 아직 어둡고 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새로운 날의 시작을 펴려 나서는 길이 외롭다.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동네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휘돌아 마음까지 쓸쓸하다. ‘먹고 사는 일이 대체 뭔지’라는 말을 절로 웅얼거리며 터덜터덜 걸음을 걷는다.

버스. 기사(技士)는 더욱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새벽이라기보다 밤에 더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 차고지로 향했을 것이다. 자신의 몸보다 소중히 여길 버스에 시동을 걸고 어둠을 헤치며 길을 뚫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달려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없는 길이다.

시민의 발이라 불리는 버스는 특별하다. 더운 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곳도 추운 날 따뜻한 히터를 제공하는 곳도 버스다. 입김 맺힌 유리창에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하트를 그리거나 뿌연 창문 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잡념을 재정립하는 곳도 버스다. 때로는 연로하신 어르신이나 임산부 등 노약자에게 좌석을 양보하며 세상이 그렇게 팍팍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장소도 역시 버스다. 버스는 우리 삶의 축약체다.


▲ 수원여객 14년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 이대섭 씨. 승객을 안전하게 일터로 모셔다 드릴 때 가장 보람되다는 그다.

수원여객은 반세기를 넘어 1962년 3월 15일 창립해 55년 전통을 자랑하며 현재 수원시 연무동 영통 광교 이목동 곡반정동 5곳 차고지로 이뤄져 있다. 평균 11년의 장기 근속자가 다수 분포하고 설립 당시부터 노조가 성립돼 1천여 명의 근로자가 한국노총 소속 단일 노조로 구성돼 있다. 또 매년 28~30억 원의 보험료를 납부해 시민 안전과 운전기사의 안정적 근무를 보장하려 노력하고 전별금 제도를 통해 퇴직자의 관혼상제까지 챙겨주며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앞선 6월 28일 오후 수원여객 연무동 차고지 배차실에서 이대섭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대섭 씨는 2004년부터 수원여객에서 근무했다. 운전을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 동종 업계 경력도 오래던 터였다. 하루 16시간을 근무하는 이대섭 씨는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1~12시에 일을 마친다. 이틀치 일을 하루에 하기에 그렇다. 원래는 8시간 근무가 정상이며 근무 시간이 길다 보니 상당한 피로감을 갖는다. 휴식 시간은 노선과 운행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통상 3시간 10분을 1회 왕복 시간으로 잡고 정상적으로 위반 사항 없이 운전하면 2시간 40~50분 정도에 운행을 종료한다. 그렇게 생기는 짬짬이 시간 20~30분이 쉬는 타임이다. 이 틈에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가며 이대섭 씨처럼 인터뷰도 한다.

이대섭 씨가 운행하는 구간은 수원시 연무동에서 오산시 세교지구까지로 노선은 일정하게 정해져 다른 노선은 운행하지 않는다. 노선 하나를 배정 받으면 변동 없이 운행해 효율적 체제로 운영된다. 결근이나 공석이 발생할 경우 예비 기사가 그를 충당한다.

근무 시간이 길다 보니 격일제며 한 달 12일이 만근으로 그렇게 한 달을 일해 받는 실수령액은 월 200만원을 선회한다. 공제 전 총 급여는 280~290만원 정도이나 세금과 전별금 등을 제하고 나면 이 금액이다. 전별금이란 퇴직 기사들 사이의 상부상조로 그들의 관혼상제에 보태는 자금을 뜻한다. 경우에 따라 3~4번의 근무를 더할 수도 있고 관혼상제 횟수에 따라 전별금 규모는 유동적이다.

이대섭 씨가 가장 보람찰 때는 아침에 출근하는 이들을 태울 때다. 자신의 힘으로 일터로 떠나는 승객들을 “모실” 때 뿌듯함과 흐뭇함을 느낀다. 그 때 이대섭 씨의 버스는 사람과 사회를 잇는 탄탄한 다리가 된다.

오산 세교 지구 한 승객은 이대섭 씨의 차를 탈 때면 매번 드링크제를 선사한다. 카드 찍으며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덤이다. 그럴 때마다 이대섭 씨 기분은 많이 풀린다. 일명 ‘진상(眞想)’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괜스레 시비를 걸거나 무작정 카드 오작동을 따지고 자신이 졸다가 내릴 때를 놓치고는 소리를 치는 경우, 음주 후 고성방가나 토사물 투척도 허다하다. 청소 등 뒷정리는 물론 운전자 몫이다.

이대섭 씨는 시민 안전을 위해 휴대폰을 집중해 보며 승·하차 하는 것에 자제를 당부했다. 사고는 탑승객이나 운전자에게 모두 치명적이다. 수원여객은 동료들과의 우애가 돈독하고 관리직의 배려가 두텁다. 사고 시 운전자의 급여를 제하거나 불이익을 주지는 않지만 큰 사고의 경우에는 운전자가 해고를 당하기도 하고 다른 직장에 입사하기도 힘들어 진다.

수원 여객은 수원 시민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쾌적한 버스 이용을 당부한다고 이대섭 씨는 전한다. 선하고 강직한 얼굴에서 53년 그의 생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듯했다.

/ 이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