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화가 백서율 “자신을 찾는 그림 그릴 것”

사진의 등장은 그림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동안 보이는 대상이나 풍경을 그대로 그리는 것에 그쳤던 그림이 19세기 프랑스 화가 다게르(Jacque-Mandet Daguerre)의 사진술 발명으로 화가 특유의 세계와 영혼이 투영된 그림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는 구체적 형체를 알 수 없는 독특한 형상을 그리는 추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발전한다.

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나 생활 속 미술조차 추상화가의 작품인 경우가 다수다. ‘차가운 추상’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직관의 감정에 의한 표현으로 빛을 낸 러시아 칸딘스키의 이름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추상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화가 백서율은 그런 면에서 익숙하다. 그녀가 그려내는 그림은 어딘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여기서 익숙함이라 함은 옐로우와 핑크 톤을 기조로 한 색채에 무언가 생경한 듯하면서도 눈에 익은 형체가 자리하기 때문이며 낯섦은 그 형체의 상세한 의미와 구상을 쉬이 떠올리지 못함이다. 백서율은 “수년 간의 성장통을 거친 끝에 지향해야 하는 작품 세계는 제 자신을 찾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고 그림의 겉이 아닌 안을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이 설사 서투르고 알 수 없는 형상일지라도” 말이다.

그녀만의 작품 세계 실현을 위해 때로는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인간관계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구현하기도 한다. 작가의 사회적 의미 참여에도 힘쓰는 화가 백서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화가 백서율은 “자신을 찾는 작품 세계 구현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 지향하는 작품 세계 및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무엇입니까.
- 한때는 보여 지는 것에 집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법이나 재료의 맛에서 오는 화려하고 현란함에 매혹되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쓴 적이 있었죠. ‘내가 누구인가’라는 본질보다는 ‘내가 누구로 보여 지는가’에 집착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보이는 ‘나’는 진짜 제가 아니죠. 그렇다 보니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우울함을 많이 느껴야 했습니다. 2~3년의 성장통을 겪고 나서야 제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제 자신을 찾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고 그림의 겉이 아닌 안을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서투르고 알 수 없는 형상일지라도 저 자신의 것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변형된 재현이다, 추상이다, 추상의 경계다, 초현실주의적 그림이다’ 등등의 평가는 제가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저답게 그림을 그리는 것만을 지향합니다.
재료는 몇 가지로 정해 놓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게 쓰면서 기법이나 효과를 실험하고는 합니다. 아크릴, 판화, 콜라주 등 최대한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있으시다면요.
- 2016년 개인전을 했는데 그때의 작품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우리’와 ‘그들’ 속에서 잊고 지내는 가장 존귀한 '나'라는 테마로 모든 인간 관계에 영향 받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개인전에 낸 라는 다섯 작품들이 아직은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네요.


▲ 백서율의 작품<Take me far from home 2016>이다.

■ 작가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될 때와 어려움을 느낄 때는 언제신가요.
- 아무래도 가장 보람 될 때는 누군가의 ‘좋아요’를 받을 때가 아닐까요? 하하. 그림을 보고 “좋았다, 가슴이 따뜻해졌다”와 같은 이야기를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끼고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게 됩니다. 반대로 슬럼프에 빠질 때는 정말 견디기 힘이 듭니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고 스스로를 자책해 절망에 빠뜨립니다. 한번 절망에 빠지면 좀처럼 나오기가 힘이 들어서 슬럼프의 시간이 오면 한동안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일-집-일’만 반복하면서 혼자 동굴로 들어가 버립니다.

■ 작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 작가는 누구보다도 사회적 연대에 책임감을 느끼고 작품들이 사회에 나오는 것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분명 혼자 작업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인식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작가라는 임명을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에 책임을 느끼며 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 향후 계획과 꿈은 무엇인가요.
- 계획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전 항상 그림을 사랑하고 갈망하죠. 여전히 좌절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이제 이 일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답니다. 앞으로도 넘어짐과 갈망과 일어섬을 반복하며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 좀 더 좋은 작가, 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한 발 더 발전되는 것, 그거면 계획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 백서율의 작업실은 서울 홍대 인근에 위치한다.

■ 와이뉴스 독자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 위에 저도 있을 테니 걷다가 저를 보시면 인사 나눠요. 앞에 놓인 길을 뚜벅뚜벅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이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