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기_어때] ㊱용인시_포은 정몽주 선생 묘

 

[와이뉴스]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고려 후기 관리이자 학자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로, 1972년 5월 4일 경기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묘역 입구 신도비는 1696년 건립됐으며 송시열이 찬(撰)하고 김수항이 글을 썼으며 정몽주 충절과 높은 학식을 적었다고 한다. 

 


1360년 문과에 장원 급제했고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거치다 1390년 수문하시중이 됐다고 한다.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유학을 진흥하고 성리학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에 가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동방이학 시조로 추대된다고.


고려 말 정도전, 조준 등이 세력이 커지는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다 이방원의 자객에게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됐다. 

 


일설에 따르면, 순절 후 개성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 경북 영천으로 이장할 때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명정이 바람에 날아갔다. 지관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이를 신기하게 여겨 날아가는 곳을 끝까지 따라가 보니 지금의 이석형 묘에 떨어졌다. 사방을 둘러보던 지관이 이곳이 훌륭한 명당임에 감탄하며 이는 포은 선생 스스로 마련한 명당이니 이곳에 안장해야 한다고 일러,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부인 경주 이 씨와 합장했다고. 

 


또 하나의 전설은 조선 전기 문신 이석형과 관련 있다. 명정이 떨어진 곳이 원래 이석형의 묏자리라는 것인데, 정몽주 후손이며 이석형(1415-1477)의 부인인 연일 정 씨가 이 곳이 명당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 씨는 친정보다 시댁이 더 잘되길 바라서 정몽주 선생 무덤을 명당에 못 모시게 하려 밤새 이곳에 물을 길어다 부었다. 다음날 정몽주 선생 이장이 물 때문에 불가하게 됐고, 할 수 없이 옆 언덕을 택했다. 훗날 그 자리에 연일 정 씨가 남편 이석형을 안장했다. 정몽주 선생은 1406년 이장됐다. 이 설은 연일 정 씨와 연안 이 씨 묘역이 바로 옆에 있어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인다고. 

 


모현면은 원래 쇄포촌으로 불렸으나 정몽주 선생 안장 후 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모현(慕賢)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자료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디지털용인문화대전, 경기문화재단, 문화관광해설사 통합예약, 경기도메모리 등 
※ 촬영: 20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