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에레나보다 빛나는 ‘숙자’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기지촌(基地村)은 병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서비스업 중심의 생활권을 형성하는 군사취락 지역을 일컫는다. 광복 이전에는 일본군을 상대로 그 주둔지에서 발달했고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발달했다고 전해진다. 주요 미군주둔지에는 수복과 더불어 기지촌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미군의 외출과 외박이 허용된 1957년부터 급격히 번창하기 시작했다.

 

한홍구 박사의 <유신>에 따르면 미군을 상대로 하는 여성의 숫자는 많게는 18만에서 적게는 3만으로 추산됐다. 일곱 집뿐이었던 평택 안정리는 수천 명의 위안부가 모여 사는 거대한 기지촌으로 변화했다고. 미국이 닉슨 독트린에 따라 1971년 3월 7사단과 3개 공군 전투부대 등 주한미군 6만 2천 명 중 2만여 명의 철군을 단행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미군 추가 철수 방지에 전전긍긍했고 이 틈을 탄 미국은 다양한 경로로 기지촌 정비 요구를 했다. 이로써 박정희 정부가 외화를 벌기 위해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을 직접 관리하는 사실상의 ‘공창제 운영’이 시작된 셈이다.

 

이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어땠을까. <유신>에 따르면 1964년 한국의 외화수입이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미군 전용 홀에서 벌어들인 돈은 10퍼센트에 가까운 970만 달러였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은 외화를 벌어들인 ‘산업 역군’으로서의 대접을 받고 있느냐 거기에는 물음표다. 2014년 6월 25일 원고 122명이 제기한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이 2018년 2월 8일 2심 판결 후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군 위안부의 상당수는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온 미성년자들이었다. 인신매매로 팔려 온 피해자 중 한 명이 기지촌을 탈출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요청받은 경찰이 탈출한 여성을 직접 도로 포주에게 데려간 사건도 있었다고. 성폭행, 감금, 매춘 강요, 인신매매, 마약 투여, 강제 낙태, 공무원의 유착 부정 등 이들에게 행해진 인권유린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인터뷰를 진행한 김숙자 할머니의 친구도 음질이라는 성병으로 살바르산 606호를 병원에서 주사로 맞고 30분 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스무 살이었다.

 

경기도는 좀 빠르게 움직였다. 2020년 4월 29일 ‘경기도기지촌여성지원등에관한조례’가 최초로 제정됐다. 파주시 또한 이은 6월 22일 기초자치단체로는 최초로 ‘파주시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21대 국회도 시민입법 형태로 제시한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여성가족 상임위원회와 논의 중에 있다고 한다. 우순덕 사단법인 햇살사회복지회 대표에 따르면 이에 이어 평택시도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앞선 설 한 위안부 할머니가 타계하셨고 장제비 문제로 경기도에 연락했으나 아직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아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는 것.

 

앞선 2일 찾아간 평택시 팽성읍 햇살사회복지회 등록된 기지촌 미군위안부 생존 할머니는 70명 정도. 이 중에는 김숙자 할머니처럼 칠십 대 초반부터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자도 있다. 대부분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살고 있으며 크고 작은 질환을 앓고 있다.

 

김숙자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목소리는 힘 있었고 또랑또랑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숙자 이야기’에서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다고. 현재 햇살사회복지회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재현하는 전시관으로 탈바꿈 중이다. 여성들이 머물렀던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작고 낡은 싱크대며 70년대 쓰였던 문짝도 보존하고 있다. 또 사진 전시관, 회의실, 자료 보관실 등 알차게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김숙자 할머니처럼 당사자 해설사가 일정한 절차의 교육과정 후 투입될 계획이라고 한다. 열여덟 살 어찌 보면 가장 아름다울 시절에 기지촌에서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의 세월을 보냈다. 힘들게 번 돈으로는 집안 살림을 보탰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가정 형편과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님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착한 숙자 씨였다.

 

대한민국은 아름답고 꽃 같은 우리네 여성들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최전방’으로 내몰았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이제 그들은 늙고 병들어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에레나보다 빛나는 ‘숙자’, 그들은 우리의 자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