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대학교 1학년 스무 살 때, 수강을 마치고 과 동기들과 떡볶이를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때였어요. 뒤에서 자꾸만 이상한 느낌이 나서 뒤돌아보니 키가 멀대같이 큰 한 청년이 매우 어색하게 웃고 있었어요. 그와 함께 저의 둔부 근처에서 갈 길을 잃은 그의 손은 당황했고, 남성의 얼굴은, 세상에서 그처럼 비굴한 표정은 처음 봤어요.”
- 성추행 경험 여성 사례 중
위의 일은 다음부터가 시작이다. 이 용감한 여성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여성의 집보다 몇 정거장 앞서 내리는 남성을 뒤쫓아 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들어가는 대문을 확인하고 근방 순찰을 하는 의경의 도움을 받아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남성에게 물리적 폭행을 당했으나 그 때는 그리 아픈지도 몰랐었다고 전한다. 허나, 여성에게 더 아픈 일은 당시 집 마당에 같이 있었던 남성의 모친과 누나의 말이었다.
모친은 대뜸 “우리 아들 그런 애 아니에요”를 선사했고, 누나 역시 동생을 두둔하는 말을 했다.
최근 남성의 성비위와 관련된 파문 및 사건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자신의 친부에게 40년간 수천 회에 걸쳐 강간을 당하고 수회의 낙태를 해야만 했던 여성, 형부에게 성폭행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만 했던 여성, 1년여 만난 남자친구에 의해 이른바 ‘네토 성범죄’를 당한 여성, 교사에게 성추행 당한 학생 등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지금 성범죄 천국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해당 범죄와 관련한 사건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 이와 같은 사건은 최근에 들어서야 늘어난 것일까.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다. 여성과 남성, 우리 사회의 성범죄 인식이 기존보다 한층 나아간 결과라고 본다. 즉, 과거에서 이러한 범죄는 은연중 혹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으나 그저 ‘그러려니’ 했거나 보복이 두려워 표면상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학교 앞 ‘바바리맨’이나 ‘강제의 하룻밤’으로 결혼한 여성도 있지 않았던가.
과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은 어떠했는가. 조선시대에는 일부다처제에 준하는 축첩제도가 허용됐었고 이에 따라 첩, 소실, 측실, 부실, 후실 등 본처 외의 다수의 여성을 자신의 집에 들이는 것이 허용됐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당시에는 먹고 살기 힘든 여성의 집에서 ‘입 하나 줄이고자’ 해당 여성을 자발적으로 보냈다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여기에 칠거지악이라 하여 남편이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사유 중에는 질투와 말이 많이 것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성이 이를 ‘순순히’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존여비 사상과 더불어 경제력의 부재였을 것이다. 또 하나는 여성은 남성에게 일단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사회적 질서 분위기, 세대를 거슬러 이어온 가스라이팅도 한몫했을 거라고 본다.
2025년 지금은 어떠한가. 다행히 많은 남성이 깨어났다고 우선 말하고 싶다. 여성을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며 행여나 상처 주지 않을까 섬세하게 조심하는 남자들이 꽤 많이 보인다. 고무적이다. 가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 선조치해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소위 ‘이대남’이라고 하는 층에서는 적지 않게 자발적 ‘꼰대남’을 볼 수 있다. 이건 성향적 차이로도 해석될 수도 있겠다. 이들의 특성은 순종적이고 조신한 여성상을 선호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외연을 조금 확장하여 부연하고자 한다. 이것은 남성에게 더 많은 스펙과 책임감을 부여하는 풍조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일례로 결혼 과정에서 남자는 각종 능력과 더불어 보금자리를 마련할 만한 재력까지 요구되는 데 비해 여성은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도 한몫하지 않을까 한다. 이로써 여성은 함께 인생을 걸어 나가는 동반자가 아닌,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 즉 남성의 울타리 안에 예속되는 존재로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성범죄 사건에서 강간·강제추행 발생 건수는 가장 높은 비중을 여전히 차지한다. 행정안전부 경찰청 성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에 따르면, 2014-2023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발생 건수는 2015년 이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통신매체이용음란 범죄 발생 건수는 2020년부터 뚜렷하게 증가해 2022년과 2023년에 1만 건을 넘어섰다. 성적 목적 다중이용장소 침입 범죄 발생 및 검거 건수는 다른 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전반적으로 성범죄 발생 건수는 꾸준하거나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범죄 유형별 검거 건수 또한 발생 건수에 비례해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2014-2023년 강간 강제추행 발생 건수는 꾸준히 2만 건대를 넘어섰다. 2014년 21,172건, 2015년 21,352건, 2016년 22,229건, 2017년 24,106건, 2018년 23,467건, 2019년 23,531건, 2020년 21,702건, 2021년 20,267건, 2022년 22,500건, 2023년 22,381건으로 나타났다.
동 기간 강간 강제추행 검거 건수도 유사하다. 다만 2021년도에만 19,211건으로 2만 건을 넘지 못했다.
사이버 성폭력범죄 현황에서는, 2024년 전체 발생 건수는 3,579건이며 2,654건이 검거됐다. 가장 많이 발생한 유형은 ‘아동 성착취물’로 1,622건이 발생했으며 이 중 1,323건이 검거돼 약 81.6%의 검거율을 보였다.
‘불법촬영물’ 범죄는 784건이 발생해 503건이 검거됐고 ‘불법성영상’은 513건이 발생해 322건이 검거됐다. 특히 ‘불법합성물’ 범죄의 경우는 2023년 180건에서 2024년 660건으로 급증해 약 3.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년간 추세를 보면 아동 성착취물 발생 건수는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불법합성물 범죄는 2023년부터 새롭게 통계에 포함된 이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여기서 충격적인 것은 아동성착취물 관련 범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발생건수를 상세히 보면 2024년 1,622건, 2023년 1,052건, 2022년 1,052건, 2021년 1,747건, 2020년 2,623건, 2019년 756건, 2018년 1,172건이었다.
이쯤 되면 정말 ‘애 아이 가릴 것 없이’ 성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결론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위 수치들은 집계된 것일 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범죄들은 알게 모르게 현장에 아직 산재하지 않을까 한다.
제목에 쓴 “남성의 벨트 아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예전 한 팟캐스트에서 진행자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성 편력이 심했던 대통령을 거론하며 ‘공칠과삼’이며 그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그의 여성 편력과 염문설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정치인 등의 성파문도 잇달아 알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당사자들은 적잖은 타격을 받기도 했다.
위의 범죄들이 ‘범죄(犯罪)’로 규정되는 이유는 상대편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지 않았고 동의도 당연히 없었으며 때로는 힘의 불균형에 기인한 압박으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 만을 양보해 인간도 동물이므로 욕구와 본능에 따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여성 또는 남성이 동의했다면 그래 그건 넘어갈 수도 있다고 치자. 다만, 그러한 사전 동의나 합의 없이 이뤄진 성비위는 당해 여성(남성)에게 씻기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초반 언급했던 성추행을 당했던 여성은,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 남성의 세상 비굴한 표정은 희미해졌는데, 당시 남성의 누나가 했던 말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며 반복적으로 되뇌게 된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더욱 아리게 파고든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 한두 번 겪어보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