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뉴스] 땅이 울렸다. 수원 화성행궁 유여택 마당에서 무예 시범을 보이는 이는 당시 많아야 둘셋이었다. 그럼에도 가히 지축을 울린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면에서 올라오는 파동은 적지 않았다.
최형국 연출은 이를 오랜 수련의 힘으로 인한 땅을 딛고 힘을 발산하는 능력 향상의 결과라 설명했으며 또한 이는 중국 무예에서 발경(發勁)이라고도 한다고 전했다.
통상 무예(武藝)하면 떠올리는 모습은 바람을 가르는 검,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 달려오는 군마, 고요한 호흡과 몸의 정렬 속에서 순식간에 날아드는 활 등을 연상할 것이다. 즉, 그 추임새가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동작들 말이다.
최형국 연출은 필살기는 단순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실제 무예에서는 그렇게 화려한 공격법이 통하지 않으며 오히려 동작이 크고 화려하면 그만큼 방어력이 떨어진다고°. 그러면서도 힘있게, 어깨에 창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바로 무(武)의 본질이라고 전한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경기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문화사·전쟁사·무예사를 연구해 왔다. 『친절한 조선사』(2007), 『조선무사』(2009),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2013),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2015) 등의 저서와 「조선초기 군사 전술체계와 제주 전투마」(2014), 「조선전기 무과에서의 격구 도입배경과 그 실제」(2013), 「17세기 대북방 전쟁과 조선군의 전술 변화」(2012)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 한국 무예사에 공헌을 한 것으로 일컬어진다. 또 ‘무예24기 시범단’ 단장과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수원의 전통무예 보존과 발전에 힘써 왔다고 평가 받는다.
최형국 상임연출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일문일답
Q. 무인이시기도 하나 인간적인 면이 궁금해 그러한 면을 조명하고 싶다. 지금 세 가지 캐릭터시다. 무인이시면서 역사학자이시기도 하고 또 연출가기도 하시다. 그 3개 중에서 어떤 캐릭터가 제일 연출가님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어떻게 불리고 싶으신지.
A. 일단은 시작인 무예인 최형국으로 불리는 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걸 바탕으로 무예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무예를 또 하나의 콘텐츠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연출일을 하고 있으니까 무예가 바탕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두 번째는 무예를 하되 공부하는 문무겸전의 사람, 마지막으로 현대 시대에 문무겸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대중 앞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또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형태. 왜냐하면 이미 무예가 필요 없는 세상이 돼버렸으니까 무예의 이론도 전통의 개념인데 그것들을 바탕으로 현대에 맞게끔 재창조하는 것이 연출의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Q. 무예인으로 얼마나 살아오신 건지.
A. 지금 수련한 지 한 33년 됐다.
Q. 19살 맨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는지.
A. 대학에 들어가서 사물놀이 풍물패 탈패 생활을 했었다. 탈춤 추면서 전통문화 관련한 다양한 문화가 제 몸에 맞았다. 그 과정에서 무예도 (접하게 됐다). 누군가 탈춤을 추고 있는데 또 칼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건 뭘까 찾아보니까 우리나라를 전통시대 때 지켰었던 무예라고 설명을 해 줬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Q. 현대인에게 무예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무예가 어떤 측면에서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A. 늘 얘기하기 하는데 이미 세상은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버튼 하나로 공격이 이루어지고 드론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라고 표현을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인간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인간적 판단하에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한다. 그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게 무예라고 생각한다.
무예가 갖는 기본 속성을 세 가지로 본다.
첫 번째 야생성. 야생에서 전투할 수 있는 맨몸의 힘. 그다음에 그 힘을 가장 과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성. 그래야 이길 수 있으니까. 거기에 자기에 대한 믿음 세상에 대한 믿음, 공동체에 대한 믿음 그게 바로 영성이라고 본다. 중세에는 영성을 신에 대한 믿음으로 많이 치부를 했었는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믿음, 그 몸이 속한 공간 공동체에 대한 믿음 국가에 대한 믿음을 영성으로 확대를 시키기도 한다. 그 세 가지를 아주 올곧게 가장 바르게 수련하고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으로 땀을 흘리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예라고 생각을 한다. 스포츠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경쟁 속에서 발전한 또 다른 몸쓰임인데 그 안에는 야생성이 좀 떨어지기도 한다.

Q. 무예가 인내심이라든지 정신 무장, 마음을 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나.
A. 그렇다. 몸이라는 개념 마음이라는 개념 정신이라는 개념을 다 따로 구별 지어서 생각을 하려고 한다. 정신,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이 몸이라는 거다. 그 몸 수련을 통해서 한계를 극복하고 또 한계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 한계성을 극복하는 모습들. 그걸 전투 현장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무예, 살의를 내뿜는 그 형태까지 풀어내야만 자기의 한계를 절감할 수 있다.
냉혹한 세상을 겪게 될 텐데 그런 과정을 무예의 순환 속에서 미리 얻고 경험해 보고 체험화하고 그것들을 세상살이에 하나씩 적용하는 형태들에 무예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Q. 무예24기가 장용영 후신인가.
A. 정조가 『무예도보통지』라는 병서를 장용영에서 펴내게 한다. 그 무예를 가장 많이 익혔었던 부대가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이었다. 후신이라기보다는 장용영 군사들이 익혔었던 무예를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겠다.
Q. 말씀하신 『무예도보통지』를 번역하셨는지.
A. 2021년도에 4년 걸려서 완료했다. 정말 책 분량도 많고 번역하기가 어렵다. 간신히 마무리했다. 4권 5책으로 돼 있는 양인데 번역본도 목침 정도 두께다. 다행히 번역을 인정받아서 그 해에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했고 그다음에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학술원 지정 도서가 있는데 그것도 수상했다.

Q. 무예24기가 실제 전투를 위한 무예였는데 지금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공연이 됐다. 전쟁의 기술이 공연의 예술로 바뀌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이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A. 일단은 무예라는 게 지극히 개인 단독의 모습의 것들이 많다. 개인적인 훈련 수련. 무예24기 같은 경우는 군사들이 단체로 훈련했었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 단체 안에서 개인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 진법 안에서 개인의 무예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 그것들이 현대적인 무예 공연으로 정착이 된 거다. 그 안에서 여전히 무예의 우수성, 당대에 이 땅을 지키고 있었다는 그런 마음들이 유효하다는 것들은 장점이다.
다만 공연화되면서 무예의 본질에 대한 궁금함 그걸 찾는 과정들이 되게 힘들고 어려운 길이니 점점 더 단원들이나 새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부분들이 됐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다.
Q. 『무예도보통지』를 4년여에 걸쳐 번역하셨는데, 그것을 3차원화시키는 작업도 하시는 것 같다. 역사학자로서 바라보는 무예와 연출가로서 무대 위에 올리는 무예가 달라 충돌할 때 선택은.
A. 상충할 때는 일단 본질을 바탕으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특히 볼품없거나 대중들이 거부하면 소멸할 수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까지는 극적 허용으로 바라보고 풀어낼 때가 많다. 저도 한 걸음 물러선 경우다.

Q. 무인으로서 한 세대 넘게 살아오셨는데 무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되는 것과 가까운 일일지, 아니면 사람다움을 내려놓는 일에 가까운 일일지.
A. 무인이라는 게 가장 사람다운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한다. 분명히 칼을 뽑았으면 그건 뭔가를 베야 하는 도구인 건 맞다. 죽일 수밖에 없는 도구인데 그 죽일 수 있는 훈련들을 철저하게 하면서 진짜 죽음의 경지 그 끄트머리까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진짜 죽여야 할 대상인가 살려야 할 대상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부분들, 그러면 그 삶과 죽음 안에서 정해야 하는 부분들, 이것들의 옳고 그름 그러한 판단은 무예를 수련하면서 계속 앞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고 아마 죽기 전까지도 계속 공부하고 또 정리해야 할 내용들이라고 생각을 한다.

Q. 한 세대에 걸쳐 칼을 잡으면서 배우게 된 것은 무엇일지.
A. 참 어렵다. 쉽지 않은데, 이게 끝이 없는 공부의 과정이고 그 칼이라는 게 단순히 일도양단 두 개로 딱 잘라지는 것들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의 감정이 또 묻어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떻게 다스려 가고 어떻게 풀어가는 지가 (중요하다). 또 후대에 평가를 받을 거기 때문에 선배로서 거기에 그러한 마음들까지 다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Q. 영화 드라마 군사 자문도 많이 참여하셨다. 역사 콘텐츠 속의 조선 무예와 실제 무예 24기의 차이점이 있을지.
A. 일단 가장 큰 차이는 그렇게 많이 화려하지 않다. 무예는 화려하면 가장 먼저 칼 맞는 거다. 가장 지극히 단순하고 간결한 게 무예다. 그래야만 상대의 목숨을 취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간결함에 담겨 있는 매력 그걸 찾는 게 진짜 수련의 방법일 거고. 연출가로서 그 담백함을 어떻게 대중들이 지루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구상하는 것) 그게 요즘에 지상 과제이기도 하다.
Q. 다치신 적은 없으셨는지.
A. 엄청 많았다. 기병들이 수련했었던 마상무예 연습하면서 수백 번 낙마해 어깨 탈구 해서 병원에 몇 달 입원하는 상황까지 갔었고. 주특기가 쌍검인데 쌍검 시범하다가 칼날이 갑옷에 걸리면서 한쪽 칼이 몸에 달려든 때도 있었다. 손등 위쪽에 신경이 다 끊어져서 수술한 적도 서너 번 있었다.
그러함에도 누군가는 이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계속했다.

Q.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무예24기 후기 선발이 쉽지 않다고 하셨다.
A. 그렇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들이 편하게, 갈수록 더 몸을 안 쓰고 편하게 직장 생활하거나 편하게 일을 하는 것들로 세상이 흘러가니 (더 그러한 듯하다). 무예를 익히려면 일단 튼튼하게 몸수련을 해야 하고 또 병서 공부나 이런 문적인 부분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함께 해 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어려워한다. 좀 안타깝다. 대가 끊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Q. 그럼에도 무예24기에 지원하고 싶은 이가 있을 것 같다. 문을 두드린다든지 채용을 한다든지 과정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A. 일단 수원에서 지금 무예24기 관련한 전수 교육 프로그램이 가끔씩 진행이 되고 있는데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 무예24기뿐 아니라 자기 몸을 가다듬는 다른 무예도 괜찮으니까 기본적으로 익히고 이후에 무예24기를 통해서 꿈을 펼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Q. 약간 무거울 수도 있는데, 무예를 하고 싶지만 실질적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망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예를 하면서 진로를 결정하는 게 사범 등 외에 무엇이 있을지.
A. 지도 사범이 될 수도 있고 요즘 보급하는 것 중에 하나가 홍재 무예 체조, 스프링 무예 체조라고 해서 요가와는 다른 형태의 무예를 바탕으로 인간의 몸을 부드럽게 만들고 체력을 강화시키는 체조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그렇게 확장시켜서 조금씩 풀어나가면서 더 새로운 세상은 자기가 열어서 만들어 나가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여기 수원 화성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시립 무예24기 시범단까지 오는 데도 인생에서, 무예 수련에서 한 20년의 시간을 투여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Q. 만약 36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무예를 하실지.
A. 다시 할 거다. 이처럼 재미있는 내 몸 쓰임새,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잘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무예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무예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너무 감사하다 지금도.
Q. 공연하실 때 초반에 다양한 설명도 해 주시는데 들어보니 사색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A. 맞다. 이러한 사유로 10여 년 전에 쓴 책이 『무예 인문학』이다.
무예가 왜 만들어졌는가를 생각을 해봤을 때 인문학의 본질이 무예 안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길 수 있는 흐름이 문자나 철학 예술 등의 분야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가장 몸을 정교하게 쓰고 야생적으로 쓰는 무예 안에 인문학적 흐름이 들어갈 때 그런 공부가 배경이 될 때 제대로 된 무예인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된 무예학이 적립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Q. 무예사 박사시고 논문도 많이 쓰신다. 책이나 논문 소개해 주신다면.
A. 역사학에서 무예사 1호 박사다. 올해 출판한 책인데 『진화하는 장수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책이다. 민속원에서 출간했다.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해전에 머물러 있다. 명량 노량 한산 이렇게 3대 대첩을 중심으로 바다에서만 (업적을) 쌓은 장수로 기억을 한다.
이순신의 본질은 실은 지상에서 여진족과 싸웠었던 육전의 명장이다. 우리가 생각했었던 이순신 이전의 모습 과연 영웅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그 순간의 영웅으로만 비쳐지는 것들이 옳은 평가인가. 이순신이 진짜 이순신이 되기 위해 했었던 그런 과정들과 그 이후에 우리의 기억 속에 이순신은 우리가 1592년 임진왜란 시기를 살지 않았었으니 수많은 이후의 기록을 통해서 이순신이 우리에게 이순신이 된 것이다. 그 기억의 변화 속에서의 이순신은 어떠한 정치적인 의도로 혹은 학문적인 개념으로 우리에게 이순신으로 마음에 들어왔는가를 그 책에서 잡아냈다.
이순신 장군의 처음 근무지가 함경도 최북방이었다. 여진족과 매일 언제 전투할지 모르는 공간, 거기서 장기간 한 2-3년 근무를 하고 다시 훈련원으로 왔다가 그다음에 지금은 러시아 땅인데 녹둔도라는 섬이다. 압록강 하구의 그 공간에서 여진족과 처절한 전투를 경험하고 그다음에 근무지를 옮겨간 게 발포, 고흥이다.
논문 중에 가장 인상적인 논문이라면 역시 올해 발표한 논문 중에 하나다. 1년에 논문 두 편 책 한 권 쓰는 목표로 한 20년 살았다. 지금 발표한 논문 50편, 단행본 16권 정도이다.
소개해 드릴 논문이라면, 정조의 활쏘기에 대한 정치적 활용 부분(이다).
정조가 가장 활쏘기에 뛰어난 실력을 가져서 50발을 쏘면 49발을 다 맞힌 후에 한 발은 겸손이다 겸양이다 안 쏘는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셨던 분이다. 실제로 그런 기록이 『조선왕조실록』부터 해서 『홍재전서』에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고풍이라고 해서 실제로 국왕이 활쏘기를 했다. 조선시대 때 활쏘기를 순이라고 표현한다. 다섯 발을 일순이라고 한다. 오순을 쏘면 25발이고 10순을 쏘면 50발을 쏘는 거다. 50발이 정확하게 다 어디에 박혔는지 그것까지 기록을 남겨서 문서로 신하들한테 기념으로 준다. 그걸 고풍이라고 한다.
정조가 왜 이렇게 활쏘기에 매진했는지 그런 내용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씨 왕조가 만들어진 조선의 시작인 이성계가 가장 활쏘기가 뛰어났는데 조선의 가풍은 활쏘기에 담겨 있고 정조가 이 가풍을 이어받아서 활쏘기에 뛰어나다 이런 정치적 타개책. 정조는 신하들과 활쏘기 하는 걸 굉장히 즐겼다. 일종의 친목 모임을 활쏘기를 통해서 진행을 한 거다.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라는, 궁극적인 하나의 무예이자 유교 수양의 덕목으로 삼고 있는 활쏘기를 그들과 함께 나누면서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거였다.
정조가 독특하게 밤에 활 쏘는 걸 즐겼다. 밤에 아주 작은 권역을 중심으로 심지어는 장혁이라고 해서 손바닥 장 손바닥만한 과녁을 멀리 두고 그걸 향해서 화살을 쏴서 맞힌다. 밤에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 공부를 활쏘기를 통해서, 몸 공부와 마음 공부를 가장 정교하게 다듬는 도구로 활쏘기를 활용했었다. 그런 등등의 내용이 논문으로 발표됐다. 그게 「정조의 활쏘기 수련 특성과 정치적 활용」이다.
Q. 마지막으로 10년 내지 20년 후 인간 최형국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면.
A. 하늘이 내려주신 소중한 무예에 대한 사랑들이 계속 이어지고 한결같이 몸 공부 머리 공부 마음 공부 잘 풀어줘서 고맙다라고 스스로에게 전해 주고 싶다.

°최형국, 『무예 인문학』, 인물과사상사, 2017, 202-203쪽.
*같은 책, 6쪽. 무(武)라는 글자를 파자(破子)해 보면 무예의 본질은 ‘창戈을 그치게止 하는 것’이라고 설파하기도 하는데, 무(武)의 상형문자를 살펴보면 그칠 지(止)가 발바닥의 형태를 묘사한 데서 출발했고, 발 족(足)과 그칠 지(止)를 참조하여 움직임이 있어야 멈추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그칠 지에는 인간이 걸어온 발자취가 담겨 있다.
-문무겸전(文武兼全): 글솜씨나 학문(文)과 무예, 무략(武)을 두루 갖추고 있음
-고풍(古風): 조선 시대 임금이 활을 쏜 뒤 활쏘기 결과와 하사품 내역을 신하에게 적어주던 문서이자 왕실의 활쏘기 풍습
-장혁(掌革):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가죽 과녁을 두고 활을 쏘아 명중시킨 일화
-인터뷰 일자: 2026.08.30. 오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