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뉴스] 감이 열려 있었다, 감나무에. 몇몇 열매는 떨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그 중 일부는 물렁한 질감으로 뭉개져 있었다.

밖에서 언뜻 보기엔 아직도 이런 곳에 사람이 사나 싶을 테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좌측으로 경사진 언덕에는 약간의 평지를 만들어 밭이 들어섰고 거기엔 붉은 고추, 토마토, 파 등의 채소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거기에 강렬한 한여름 햇빛을 상징하는 듯 녹진한 적색의 우아한 곡선미를 뽐내는 인동초꽃까지 향긋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 왼쪽으로 감나무가 보였고 앞서 언급한 열매들도 있었다, 씨알이 제법 튼실했다. 매미는 목청껏 울어대고 있었다, 우측 옆으로는 조악하나마 수도 시설이 있었고 활기 없이 늘어진 발(簾)의 좁은 틈새로 흔히 들려오는 TV 뉴스 소리와 열의 없이 관성대로 돌아가는 선풍기가 스치듯 보였다. 여기도 그저 사람 사는 곳일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씬(scene)이었다.

서너 가구 간격으로 한 길도 채 안 될 통로가 규칙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그 길을 정면으로 현관문이 마주한 곳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간간이 가느다란 줄에 빨래가 평화롭게 널려 있었다. 가을을 앞두고 붉은 고추가 펼쳐져 볕을 쬐고 있었다. 약 2,900㎡의 면적이라 하는데 체감상 70-90m 정도 직선으로 걸은 듯하다.

더 앞으로 걸어가자 우측으로 보상대책위원회라고 새겨진 현판이 보였다. 얼핏 자물쇠가 채워진 듯했다. 아이보리톤의 간이 건물들마다에는 명패와 도로명주소가 적혀 있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소방안전 문구와 곳곳에 배치된 소화기였다. 소화기 사용법 안내판도 눈에 걸렸다.

처음 겉에서만 봤을 때는 ‘열악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했지만 밀집한 건물들 사이로 난 길을 둘러보며 드는 감회는 달랐다. 한 세대 전의 도시 서민가의 풍경 내지는 마치 시골 고향에 온 듯한 정감마저 서서히 일었다. 지금 여기서 누군가 생뚱맞지만 친절하게도 내부로 들어와 식사라도 권한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풋고추와 된장을 찍어 먹으며 정담을 한참 나눠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가옥들이 맞닿아 이뤄진 골목길 끝에서 안양천변과 연결된 대로(大路)로 올라서자 처음에 보았던 강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고요한 강 옆으론 정돈된 산책로가 이어지고 그 위로 자전거를 타는 시민이 여유롭게 지났다. 반대편으론 고가도로가 나 소음이 좀 있었다.

강 뷰는 나쁘진 않았다. 강을 오른편에 판자촌을 왼편에 두고 정면의 큰길을 횡으로 보며 둔덕길을 걷다 보니 앞서 채소가 심겨 있던 작은 텃밭 사이사이로 적잖이 곁길들이 보였다. 한 어르신이 보여 서둘러 내려가 말씀을 여쭸다. 내려가는 길은 콘크리트 계단이 정성스럽고도 좁다랗게 다듬어져 있었다.

칠십은 족히 돼 보이는 어르신은 초창기 주변 개발이 되면서부터 이 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했다.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현재 이 곳에는 20여 가구(실거주자는 10여 명 남짓)가 살고 있으며 200여 개의 주소가 적(籍)을 두고 있는데 십여 명을 제외하고 대다수는 보상을 바라고 주소만 옮겨놓은 ‘위장전입’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어르신은 소수만이 ‘순수하게’ 처음부터 살기 시작한 원주민이라며 투기성 유입을 재차 짚었다. 관할청에 바라는 점을 묻자 “에어컨”이라고 주의를 두고 언급하였다가 “이조차도 너도나도 누구나 달라고 달려들기에 (힘들 것 같다)”고 전하였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소소하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화, 재개발, 그린벨트 규제가 맞물려 이 곳이 조성됐다고 한다. 서울 도심 개발로 밀려난 철거민과 공단 근로자들이 안양천변에 모여 살면서 시작됐으며 대체로 70대 이상의 노령층이 거주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도심 속의 섬’이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판자촌을 둘러싸고 고가가 이어지고 한편으로 강은 길게 뻗어 있었다. 매미는 여전히 우렁찼고 깨진 벽돌이 듬성듬성 올려진 판자와 천막 지붕은 조용하게, 한편으로는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짤막 인터뷰 후 사진 촬영 수락을 구하였다.
*소하동 판자촌(뚝방촌) 일대는 철거 및 도로 개설 계획에 따라 철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해당 부지는 아파트나 주택 단지로 직접 재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대규모 개발에 따른 교통망 확충 구역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핵심 개발 계획은 교통 대책으로 2차선 도로 개설이다. 광명역세권 개발사업의 광역교통대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광명역세권과 기아대교 앞 삼거리를 연결하는 2차선 도로가 판자촌이 위치한 안양천변 뚝방길 자리에 개설될 예정으로, 도로 개설 구역에 판자촌 일대가 도로 예정 구간에 포함되면서 기존 무허가 건물 및 판잣집들은 도로사업이 추진될 경우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로 인한 현재 당면한 갈등인 이주 문제(이축권)의 한계는, 그린벨트 관리대장에 등록된 주민 등 일부 가구는(만) 다른 그린벨트 지역으로 집을 옮겨 지을 수 있는 ‘이축권’을 부여받았다는 점이다.
소하동 주변인 서울 시흥동이나 안양 석수동 등 인접 지역은 대부분 일반 주거·공업 지역이라 이축권을 쓸 수 있는 대체 그린벨트 토지가 마땅치 않다. 또 주변 땅값이 너무 높게 형성돼 있어 수십 년간 정착해 온 고령의 주민들이 실제 이주할 수 있는 대책이 부족해 난항을 겪고 있다.
판자촌(뚝방길) 외에 소하동의 다른 구도심 지역은 아래와 같은 별도의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광명 구름산지구 도시개발은 소하동 일원 약 23만 평 부지에 5050세대 규모의 대단지 주거타운이 조성 중이며 최근 실시계획 변경 고시(수정된 공사 계획이 정식으로 허가됐으니 모든 대중에게 공식적으로 알림) 등을 거쳐 본격적인 분양과 착공 궤도에 올랐다.
소하지구 공공시설부지 복합개발은 소하동 1342-5번지(구 노외주차장) 일대에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 152호와 창업지원시설 복합 건물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