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청춘(靑春)은 푸를 청靑에 봄 춘春자를 써 직역하면 푸른 봄이라는 뜻이다. 청춘은 사전적 의미로는 스무 살 안팎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일컫지만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해 보면 인생에서 젊고 생기 넘치는 시기, 가능성과 에너지가 최고조인 시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젊음은 때로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 앞에 놓인 수많은 시간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젊은 시절에는 무엇이든 용기 있고 진취적으로 시도하는 것에 그리 큰 망설임이 없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면 때문에 젊음은 때로 다소 무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하고 자신 앞에 펼쳐진 장대한 시간이 오히려 끝없는 사막처럼 막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신뢰하는 만큼이나 타인과의 관계 형성도 중요한 시기인데, 간혹 어떠한 상황에서는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서툴기도 하고 이따금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반복된 경험과 습관을 통해 이뤄진다고 보았다. 이는 젊음의 열정보다 경험과 숙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젊음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그 가능성이 원대하지만 이는 가능성일 뿐 결과는 결코 아니기에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 넘치는 용암 같은 이 성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또한 중압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따라서 젊음 자체는 빛이 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활용 방식에 따라 그 빛이 발할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본다. 너무나 귀중하지만 대신 그만큼 또한 무거운 것이다.
흔히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들 한다. 인간의 시점에서는 ‘흐르는 상태’를 바라보기에 마치 정지상태처럼 보이지만, 실상 물은 생각보다 꽤 빨리 ‘이동하고’ 있다. 인간에게 시간도 이와 같다.
20-30대의 뜨겁고 치열하게 피어올랐던 생의 꽃은 찬란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더욱 처연하다. 지천명이나 이순 같은 논어 개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본인 생에서 가장 싱그러웠을 젊은 시절이 때로는 너무 아득하고 암담해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지날 수도 있다.
한 현자는 본인이 50대에 이르러 그동안의 삶을 보상받는 기분이 든 것 같다고 했다. 50-60대는 젊은 시절 품었던 가능성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요즘에는 생의 주기가 길어져 시니어임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들이 많고 이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또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은 시점이라고도 사료된다. 그동안 대치 상태에 있었던 내심의 욕망과 목표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 안착된 시기, 그 때가 바로 노년이 아닐까 한다.
아울러 노년에는 생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죽음조차도 초연히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불필요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차분히 마무리할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삶은 더욱 즐겁고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하며 사소한 마찰에도 중심을 잡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내적 평안을 얻게 된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삶에 한층 깊어진 여유를 가져다준다.
또한 장년층과 고령층은 젊었을 적 겪었을 많은 경험이 켜켜이 쌓여 인생의 깊이를 더한다. 노출된 무기는 눈에 보이나 무기고 안에 숨겨진 무기는 상대에게 각종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젊음이 손에 쥔 칼이라면 노년은 수많은 칼을 보관하고 있는 무기고와 같다. 그 안에 어떤 경험과 지혜가 담겼는지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젊은 시절 자신만의 탄탄한 ‘무기(추억이나 경험 도전 등)’를 쟁여놔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하겠다.
°시애틀 추장 외·류시화 엮음,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더숲, 2018, 100쪽.









